관계도 정리정돈이 필요하다
연말연시는 정리정돈을 결심하기 좋은 시기다. 정리용품 매출이 한층 뛰는 것도 이때다. 나도 한때 좋아서 샀지만 더는 안 쓰는 물건, 추억은 남았지만 쓸모는 사라진 물건들을 이맘때 모아 처분한다. 그런데 안 쓰는 물건에 대한 정리뿐 아니라 관계에 대한 정리도 필요하다. 불필요한 물건은 공간을 차지할 뿐이지만, 부적절한 인간관계는 정신을 좀먹기 때문이다.
한 쪽만 노력하는 관계는 의미 없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만난다. 좋은 인연으로 만나 오래 함께하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기뻤던 첫 만남과 달리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이로 끝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이런 부류는 ‘소중한 사람’ 명단에서 조용히 삭제하고 더는 신경 쓰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로 얼굴을 자주 볼 사이가 아니라면 상관없지만, 문제는 가족, 직장, 우리 동네처럼 나의 일상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불협화음이 생기는 경우다. 가까운 사람과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이 싫어서, 많은 사람들이 삐걱대는 관계를 억지로 이어가려 애쓰다 마음의 병을 얻는다. ‘내가 좀 더 손해를 보고 노력하면 상대방도 진심을 알아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잘못된 관계를 끊지 못한다. 하지만 나만 괴롭고 상대방만 편한 사이가 평등할 수 없고, 그렇게 불균형한 관계가 오래 유지되기란 힘든 법이다.
예의 없는 오지랖에는 단호하게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고양이를 키운다는 이유만으로 ‘불편한 관계’를 경험한다. 가까운 사례는 주변 사람들이 결혼, 임신, 출산과 관계된 오지랖을 부리는 경우다. 실제로 나도 고양이를 키우며 혼자 사는 터라 “고양이 때문에 외로운 줄 모르니까 결혼을 안 하지”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고양이를 키우는 기혼자 중에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거나 늦게 낳을 생각인 분은 “고양이가 있으니까 아기가 안 생기는 거야”라는 이웃의 말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출산하면 애먼 소리는 더 안 나오겠지 싶지만, 아직 오지랖의 끝판왕이 남아 있다. “아기도 태어났는데 고양이는 계속 키울 건가?”라는 친척 어른이 아직도 존재하기 때문.
이런 오지랖을 부리는 건 상대방에게 ‘반려동물도 사람 가족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가족’이라는 기본적 상식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런 질문 앞에서 침묵하거나 얼버무릴수록 불편한 관계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혹시 내가 이런저런 말을 해서 상대방과 불편해질까 봐, 나보다 어른이니까 말대꾸를 하면 버릇없다 여길까 싶어서 속마음을 이야기하기 힘들었다면, 힘든 건 올해까지만 하자. 예의 없게 구는 사람에게까지 ‘착한 사람’ 노릇 하는 것도 올해까지만 하자. “내 생각은 당신의 생각과 같지 않다”는 것을 단호하게 알리면, 그 순간은 불편할 지라도 이후에는 달라진다. 꼭 고양이와 관련된 일이 아니더라도, 내 마음이 가지 않는 일 앞에서 억지로 참고 있지 말자. 고양이처럼, 싫은 건 싫다고 해 버리자. 결국 중요한 건 내 마음이니까.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 신경 쓰기를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아등바등 책 만들고 행사에 연이어 참여하느라 무리해서 앓아눕기도 하고, 연로하신 어머니가 쓰러지는 일을 겪기도 했다. 오랫동안 누워 계신 아버지는 죽음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가족의 건강과 관련해서 올해 유독 많았던 사건을 겪으며 깨달은 게 있다. 내게, 또 부모님께 남은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하다못해 작은 물건도 매일 사용하면 닳는데, 매일 몸과 마음의 힘을 바닥까지 짜내 쓰면서도 언제까지나 괜찮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물적 자원에 한계가 있듯, 정신 자원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부질없는 관계를 유지하느라 한정된 정신 자원을 낭비하는 대신,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다. 바쁜 일이 좀 정리되면 어머니와 함께 고양이 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해 왔는데, 돌이켜보니 틀린 생각이었다. 덜 바쁠 때 떠나는 게 아니라, 떠날 시간을 먼저 빼놓고 나서 바쁜 일을 했어야 하는 거였다. 덜 바쁜 날은 아마 평생 오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이 다시 생길 테니까.
부디 바라건대, 내년에는 무엇보다 소중한 내 마음과 건강을 보살필 시간을 최우선으로 할 수 있기를. 고양이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 내게 부당한 말을 할 때,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나에게나 주변 사람 모두에게 빌어주고 싶은 말이다.
[알림] 이번 달로 ‘고경원 칼럼’ 연재를 마칩니다. 앞으로는 야옹서가 공식 인스타그램(@catstory_kr)을 통해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