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마음따뜻한 분들의 사진만 보다가 큰맘먹고 게시글을 올려봅니다.
전 북경에 사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중국에 살면서 제가 놀랐던 것은 인권문제로 항상 시끄러운 중국이지만
길고양이(여기에선 유랑묘라고 부릅니다.)에 대한 일반 시선은 한국보다 훨씬 낫다는 겁니다.
남방에선 고양이요리도 먹고, 동물학대하는 싸이코나 고양이 싫어하는 사람은 어디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제가 고양이밥주면서 관심받아본 적은 있어도 제지당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중국생활 7년차에 다 쓰러져가는 연립주택부터 고급아파트단지까지 나름 살아봤는데
가난한 동네에 길냥이들은 사람들이 던져주는 생선뼈다귀같은거 먹고 털도 다 엉키고 꽤재재하고요.
서민아파트 길냥이들은 어지간하면 화단구석이나 지하주차장같은곳에서 사료얻어먹고 다닙니다.
고급아파트 길냥이들은 이번에 보니까 우리집 고냥이도 못먹는 캔먹고 다니더라구요.
살아가는 행색은 다 달라도 중국 길냥이들의 공통점은 여유롭다는 겁니다.
생선뼈다귀를 얻어먹던 거지행색의 냥이들도 단지내 볕바른 곳에 자리잡고 사람구경, 낮잠 즐겼습니다.
그만큼 사람한테 해코지당한 경험이 없다는 거죠.
한국에 마음따뜻한 분들 너무나 많지만 아직도 이웃들의 눈엣가시처럼 미움받는 길냥이들도 많은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는건 정말 쉽지 않은가 봅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한국에서 캣맘활동하시고 동물보호에 힘쓰시는 모든 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한국에서도 마음놓고 고양이 밥주고 자연스레 어울리며 살 수 있는 날을 바라며 우리동네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전에 살던 동네에선 제가 서너마리 냥이들을 1년넘게 먹였었는데 얼마전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네에선 저 말고도 꾸준히 사료챙겨주던 중국인부부가 있어서 제가 신신당부를 해놓고 떠나왔습니다.
지금도 가끔가서 간식은 챙겨주고요.
그런데 새로 이사온 동네엔 과연 이쁜이들이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꼬릴리!!!
이녀석을 처음 만났습니다. 재빠르게 사라져가는 녀석의 꼬리를 보며 신랑이랑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 이후로 꼬리가 인상적인 이녀석을 찾아 아파트단지를 산책겸 수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발견한 곳이 여기.
한가롭게 늘어져있는 고양이들을 보니 여기에 이사오길 넘 잘했다는!!!
애들이 윤기도 있고 첨보는 나한테도 애교를 부리는걸 보고 주변에 밥그릇이 있을거라 확신..
또 근처를 탐색한 결과..
주르르 늘어선 밥그릇에 오예!!!
사진은 나가기 싫다고 악을악을 쓰는 우리집 소심쟁이 토마스군과 카메라맨신랑을 대동하고 갔을적..
밥그릇은 여기뿐 아니라 근처에 두세개 더 있었고 누구든지 와서 새물을 채워줄수 있게 물통도 몇개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발짝 옆으로 이동하자..
진짜 고양이 아파트..
큼직하고 쾌적해 보이는 고양이집 5채가 나란히 있는걸 보고 올레!!!
바로 근처에 경비들도 있지만 다들 알고 있는듯 아무도 신경안쓰더군요.
엄마들이 애기들 데려와서 고양이랑 놀게도 하고..
마침 아이들이 하교길에 고양이 캔먹이는 걸 보고 옆에가서 말을 걸었습니다.
이동네 고양이가 몇마리쯤 되니? 20마리쯤?
여기말고 또 밥주는데 있니? 5동근처요.
잽싸게 5동으로 가서 다시 수색에 들어갔습니다.
이런저런 화단을 지나.. 또 하나의 길고양이 성지, 유랑묘의 파라다이스를 발견했습니다.
고양이 아파트 제2차단지.
여기는 캣타워까지 갖춰져 있고 근처 나무아래는 고양이방석들도 놓여있고 관리실앞에 사료그릇이 또 주르르..
무슨 손님이 오셨나.. 하고 부스스 일어다는 순둥이.
캣타워에서 못놀아본 촌시런 토마스군.
여유로운 이동네 냥이들과는 다르게 무서움타서 꼴이 말이 아닙니다.
미안하다.. 토마스.. 얘들이 너보다 비싼 사료먹는구나.. 크흑..
순둥이가 먼저 다가와 인사하는데 정신을 어디 안드로메다로 보냈는지 눈까지 풀렸습니다.
어쩌면 얘네들은 자기 구역에 다른 고양이가 왔는데 하악질한번 안하고 반가워만하는지..
고양이들과 한참 놀고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니하오 하십니다.
모든 수수께끼는 밝혀졌다!
이 할머니가 우리동네 길고양이 아파트를 손수 만드신 분입니다.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냐니까 여기도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그치만 우리가 사료를 주면 냥이들이 쓰레기도 안뒤지고 모두가 좋은거 아니냐고 설득하셨고
못하게 하는 사람은 없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호적이니까..
여기는 아파트관리실 직원도 먹이를 주고, 이전 동네에도 경비들이 길냥이밥주는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이동네 뜻맞는 이웃들과 길냥이들 중성화수술도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중엔 서양인들도 몇분 있고 매일 오후 4시반이 밥주는 시간이니까 나보고도 나와보라고 하셨습니다.
4시반 좀 넘어서 화단으로 나가자 할머니와 이웃들이 사료와 캔을 들고 밥차순례를 하고 계십니다.
고사리같은 손으로 사료를 퍼나릅니다.
4시반이 되면 동네 길냥이들은 밥시간 알고 제 구역 제 자리에서 일제히 할머니를 기다리고
원하는 사람은 자유롭게 할머니와 함께 밥차순례에 동참합니다.
나를 보자 할머니는 반가워하시며 한마리 한마리 이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이차, 샤오헤이, 챠챠, 나이니유, 화화, 미미...
나도 보이는 대로 이름을 붙였었는데 중국이름을 들으니 더 재밌고 귀여웠습니다.
이제는 시간될때마다 수시로 단지를 산책하며 녀석들과 놉니다.
막연히 제가 꿈꾸던 길냥이들과 자연스레 살아가는 마을에 온 것 같아 너무나 기쁩니다.
한국에도 분명 편견없이 작은 생명 귀이 여기는 좋은 분들 많습니다.
그러나 배고픈 생명 밥주는 것까지 집단으로 반대하는 경우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너무 안타깝습니다.
더더군다나 골목을 더럽히고 시끄럽다고 없애야 한다는 발상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지구의 주인은 아닐텐데 말입니다.
사람과 길고양이, 자연과 생명,.. 그 조화로운 삶을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