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만주입니다.
만주는 내 손등을 살짝살짝 깨물고 나는 물티슈로 녀석의 몸을 박박 닦아 주는 걸로 애정과 신뢰를 서로 교환합니다.
우리가 나눈 정분 속에는 3년이란 시간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만주는 다른 고양이들한테도 인기가 많습니다. 성묘나 자묘나 모두 이 아이를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자기들 세계에서는 초절정 매력묘인 겁니다.
대문 기둥 위에 올라가 좌우를 살피는 모습을 보면 중세의 기세 같이 늠름합니다.
녀석은 참 당당합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대문이나 현관문 앞에 앉아 문을 열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물론 집에 도착하기 전에 목소리를 내서 자기가 오고 있음을 알리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문을 열어주면 도도하게 들어와 거실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드러눕습니다. 그런 다음 정신줄 놓고 자는 게 다반사입니다.
그런 만주가 어느 날 밤에 크게 다쳐 돌아왔습니다. 이틀 만의 귀가였습니다.
분명 소리는 났는데 현관문 앞에 아이가 없었습니다. 전에도 그랬기에 그냥 지나가는 길 이었나 했습니다.
근데 잠시 후에 나가보니 마당에 만들어 둔 박스 빌라에 다 죽어가는 몸으로 누워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도 힘든 몰골로. 이름을 부르니 눈도 뜨지 못하고 옅게 신음소리만 내더군요.
그래도 여기를 집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 몸으로 용케 찾아왔구나.
입 주위는 침 범벅이고 눈동자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나오는 건 눈물 밖에 없었습니다.
아주 큰 싸움이었나 봅니다. 처음에는 사람한테 당한 줄 알았습니다. 제 동족하고 싸워 저 정도까지 되나 싶어서.
다음 날 회사에 휴가를 내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워낙 눈치가 빨라 이동장이나 통덫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 녀석이라 할 수 없이 박스를 보자기로 싸서 택시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치료 받을 수 있게 빠른 조치를 취해주신 감자칩님께 감사드립니다.
턱과 이마를 봉합하고 구내염을 치료하고 꼬리에 있는 농을 짜내고 TNR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18일 동안 입원했다고 퇴원을 해서 지금 집에 있습니다.
퇴원하기 전 비싼 목욕도 했습니다. 전에는 별명이 노숙냥이었는데 이젠 몸에서 좋은 향기가 납니다.
집에 데리고 와 이동장을 열었는데도 나오지 않더군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제 영역이 아닌 곳이라 주눅이 들었었던
모양입니다. 목 카라를 빼주자마자 쏜살같이 달립니다. 현관문 앞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울어댑니다.
녀석을 안아다 다시 이동장에 넣으며 우아한 언어로 달래봅니다.
“이놈의 시끼야! 너한테 들인 돈이 얼만데. 낫기 전엔 절대로 못 나간다. 그냥 같이 살자.”
만주는 현재 집에서 요양 중입니다.
하품할 때 눈동자도 돌아가고 한쪽 입도 굳은 듯 부자연스럽고 커팅된 귀 끝부분도 새까맣게 덧나고
꼬리도 아직 덜 여물고 여전히 침도 흘리고......
완쾌가 된다 해도 이 구역 저 구역 강호를 누비던 그 시절과 같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참 다행입니다. 이렇게라도 살아 있는 모습을 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