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굳어진 편견을 깨거나 오해를 푸는 것은 힘들거나 불가능하다. 편견이나 오해를 신념이나 경험적으로 터득한 믿음으로 잘못 생각하니까. 그러니 따지려고 다가오는 사람에게 말도 행동도 조심할 수 밖에 없다. 왜 여기다 밥주냐는 억지성 따지기나 왜 쓸데없는 짓을 타박에 행여 길냥이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화를 내지도 못하고 물러서게 된다. 반항이라고 하는 것이 고작 최대한 담담하게 '알았다고 여기서 밥주지 않겠다' 말하는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말을 하고도 후회를 한 적도 있었다. 허나 그들도 사라질 것이다. 내가 그러하듯 시간 앞에서 우리 모두는 사라질 것이다. 모두가 사라지고 나면 그 자리를 우리의 아이들이 채울 것이고, 그 아이들을 만들어갈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아빠가 길고양이 밥주고 사진 찍는다는 것을 아는 딸아이가 길고양이를 만나면 참 이쁘다 이쁘다 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 분명 희망은 있다. 아이들에게라도 길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를 비롯한 다른 생명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소중한 존재임을 끊임없이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이 징글징글한 세상을 끝낼 수 있다. 그러니 길냥이를 챙기는 것만큼 아이를 교육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어마어마한 희망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