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루’s story :두 번째 이야기
내 친구 미나 할아버지
글 사진 한국고양이보호협회 감자칩
한국고양이보호협회에서 활동하면서
나는 기적을 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힘을 믿기 시작했다.
묘계와 인간계를 넘나드는 수많은 만남 속에서
나는 하늘도 감복하는 사랑의 힘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것을 조정하는 주재자가 누구인지 나는 끝내 알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하나는 그 원동력이 ‘진심’이나 ‘정성’과 같은
‘인간의 순수성’에 관한 것들이라는 점이다.
내 친구 미나 할아버지를 추모하며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그러니까, 벌써 2012년의 일이다. 멀리 미국에서 입양글 하나가 다급하게 올라왔다.
남동생이 급작스러운 해외발령으로 키우던 고양이를 아버지에게 맡겼다 했다.
아버지 마저 건강문제로 입원해야하는 상황에 처했는데
마땅히 키워줄 사람이 없어 새로운 가족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고양이는 딱 보기에도 크림색이 예쁜 소위 말하는 품종묘였다.
대게 협회로 품종묘 입양글이 올라오면 번식업자에게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주의사항을 댓글로 남긴다.
그러나 따님과의 상담에서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따님은 아버지가 아이의 거처가 정해지지 않으면 도저히 입원할 수가 없다 하시고
보호소에도 보내고 싶어하지 않아 하신다고 했다. 따님이 일러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안경 너머 눈물
전화를 받은 어르신은 몇 번씩이나 고마움을 표하며,
자신의 건강보다 고양이의 앞으로의 안위를 더 걱정했다.
바로 다음날, 아침 일찍 어르신이 거주하는 수원으로 향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어르신과 혼자 남겨질지 모를 고양이 걱정에 무언가 홀리듯 그렇게 수원으로 향했다.
어르신의 현관문 앞에는 가방 두어개가 놓여 있었다.
언제든지 입원할 수 있도록 채비해 둔 짐 꾸러미였다.
어른신 댁은 빈집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살림살이가 간소했다.
적적했던 그간의 삶에 고양이가 단 하나뿐인 가족이 되어줬을 것이란 짐작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어르신께서는 어린 나를 깍듯히 맞이했다. 편하게 말씀하시라 해도 예의를 다 갖췄다.
“미나야 이리오렴.”
어르신께서 고양이를 부르니,
작은 방에서 입양글에서 봤던 버터 크림색 고양이가 꼬리를 살랑 흔들며 나왔다.
어찌나 애교가 많은지 어르신 입가에 연신 뽀뽀를 하더니
무릎에 앉았다가 뒤로 돌아가 쉴새 없이 등에 얼굴을 비벼댔다.
그런 고양이를 어르신은 안타까움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내 기력이 없어서 빗질을 잘 못해줬어요.
나는 못먹어도 우리 미나는 동물병원에서 제일 좋은 사료 먹였어요.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우리 미나 엉킨 털 깍아줘요.”
어르신은 반듯하게 접은 3만원을 내게 건냈다. 입원 전 식사라도 하시라며 나는 한사코 사양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예요.
이거라도 하게 해주세요. 그래야 내가 마음이 편해.”
할아버지 안경 너머 눈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했다.
스무밤만 잘 참자
어르신은 마치 고이 키운 딸 신혼 살림살이 마련해 놓듯 살뜰히 미나 물품을 포장해놓았다.
엘레베이터를 타는 순간 이동장 속 미나가 애절하게 울며 할아버지를 불렀고,
엘레베이터까지 배웅을 나선 어르신은 참았던 눈물을 기어이 쏟아냈다.
“미나야 미안하다. 할애비가 미안하다.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우리 미나 밥 잘먹고 친구들이랑 잘 놀고 있어. 할애비가 데릴러 갈께.”
서울로 향하는 차안에서 미나는 한 번도 울지 않고 내 품에 안겨있었다.
일찍 철든 어린아이처럼 미나는 도착한 병원에서도 울지 않았다.
검진결과 약간의 탈수증세가 있어 링거액을 맞히고 엉킨 털도 밀었다.
미나가 숨터 휘루네에 도착했다.
이동장에서 나온 미나는 할아버지를 찾는 듯 두 발로 서서
자기 키보다 훨씬 높은 현관문과 창문을 기웃거렸다.
“미나야, 할아버지 치료 받으러 가셨어.
여기서 친구들이랑 친하게 지내면서 스무밤 자면 미나 보러 오실꺼야.”
참으로 착한 미나였다.
미나는 밥도 잘 먹고 다른 고양이들과도 곧잘 뛰어놀았다.
자기 보다 어린 고양이들에게 간식도 양보하며 탈 없이 처음 겪는 단체생활에 적응해갔다.
진짜 ‘스무밤만 잘 참자’ 라며 일터에 가신 부모님을 기다리는 어린 아이처럼.
어르신께 전화를 걸어 미나가 건강검진과 미용을 잘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어르신께서 내게 전화를 걸어 미나 안부를 물었다.
‘미나’ 문제로 나와 미나 할아버지는 매일 밤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
미나 할아버님은 미나 안부 외에 묘권활동가로서의 나에 관한 여러 질문을 하셨다.
난 동물운동을 하게 된 계기부터 시작해 그간 구조했던 고양이들 이야기라든지
현실적 고충 같은 것들을 미나 할아버님께 털어놓게 되었다.
몇 차례 전화통화를 주고 받는 동안
나도 어르신도 어느 누구에게 말하지 못했던 속내를 내비치고 있었다.
내 친구 미나 할아버지
한국고양이보호협회에서의 나의 역활은 구조된 길고양이에 대한 올바른 상담과
캣맘들의 사기진작이었기에 항상 이성적이어야 해야했다.
자칫 잘못된 감정적 판단으로 어렵게 구조된 길고양이가 죽음에 이를 수도 있기에
언제나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던 것 같았다.
다친 길고양이로 인해 마음 아파하는 캣맘들에게 힘과 용기를 줘야하는 입장이기에
정착 내 자신은 돌아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
아픈 사연의 길고양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내 마음의 고통은 커져만 갔다.
“할아버지…. 저 너무 힘들어요…. 저 이제 다 그만하고 싶어요.....
동물운동을 하면 할수록 제 맘엔 멍이 들어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어요.
너무 가여운 길고양이들이 많아요."
“박선생, 미나를 도와주기 위해 왔던 그 모습이 아직도 훤하네.
다른 건 몰라도 이 나이가 되면 몹쓸 사람과 좋은 사람 정도는 구분해요.
박선생, 그만두지 말어. 미나같이 가여운 아이들을 생각해....
박선생이 그만 두면 길고양이들이 희망을 어떻게 품고 살어…."
“단지 길에서 사는 힘없는 작은 생명일뿐인데 왜 이렇게 이 아이들을 괴롭힐까요…?
구조현장에서 아이들의 눈을 보면 저 또한 같은 인간이라는 게 싫어질 때가 너무 많아요.”
“참으로 내가 이 나이 먹고 후회하는 것이 딱 하나야.
왜 미쳐 예전엔 고양이란 이 동물이 사랑스러운지 모르고 살았을까야.
우리 미나를 만나서 나이 여든에 진정으로 보는 눈을 떴어. 박선생, 이 늙은이의 요새 걱정이 뭔지 알어?
자식 걱정? 내 건강 걱정? 아니야. 내가 죽고 나서 덩그러니 혼자가 될 미나가 걱정이야.
혹여나 나쁜 사람 손에 흘러가 잘못될까봐 내가 잠도 못자고 입원도 못했어.
이게 내 마음의 전부야. 자식보다 나에게 더 큰 사랑을 준 우리 미나 말이야.
언젠간 그 사람들도 깨달을 날이 분명 올꺼야. 박선생, 조그만 버티고 힘내.”
어언간 내 맘 속 멍울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어르신 또한 미나 소식을 들으며 앞으로 받을 힘든 치료에 힘을 얻는 모습이었다.
미나로 인한 나와 미나 할아버지와의 우정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다음 날 병원으로 떠난다는 어르신은 우리집에 오는 길을 자세히 물어왔다.
“박선생, 내가 치료 잘 받아서 건강해지면 우리 미나가 좋아하는 참치캔 사가지고 제일 먼저 갈께요.
그날 만나서 우리 또 고양이 얘기랑 박선생 구조 얘기 듣자고."
상
그리고 어르신은 일주일 동안 연락이 없었다.
치료가 힘드시구나 생각하고 연락을 자제했다.
그 대신 잘 나온 여러 장의 미나 사진과 미나 사진이 끼워진 액자를 준비해놓고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십여일 정도가 지난 후, 한 통의 메일이 왔다.
베트남에 있다던 아드님이 보낸 메일이었다.
메일에는 나와 미나가 그토록 기다리던 어르신 소식이 담겨 있었지만 비보였다.
“아버지는 일주일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치료가 어려울만큼 건강상태가 나빴지만 고통을 참아가면서까지
미나가 잘 있을 수 있는 곳을 마련해 주려 애를 썼던 것 같아요.
이미 마음의 준비도 하고 계셨던 것 같고요.”
당시 근무했던 회사 회장실에 털썩 주저 앉아 목놓아 울었다.
그렇게 애타게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미나가 가여워 또 울고 울었다.
아드님의 메일로 어르신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있는 회사에서 30년간 근무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집 위치를 설명했을 때 어르신은 매우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그래요. 그래요. 거기쯤이면 내가 잘 알아요.
정말 박선생이랑 이 노인네가 인연이긴 하나봐. 우리 미나가 정말 기특해.”
우연이었을까 인연이었을까 묘연이었을까
우연이었을까, 인연이었을까, 묘연이었을까.
밤마다 할아버지와 통화하며 아픈 내 마음을 보듬어갔던 그 시간들이 꿈결처럼 느껴졌다.
치료 후 미나를 보러가는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울 것이라는
어르신의 마지막 말씀만 가슴 속에서 윙윙 맴돌뿐이었다.
어르신의 별세소식을 듣고 한동안 창문과 현관불을 켜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어르신이 진짜 미나를 보러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일 후, 장례를 치른 아드님이 수척해진 모습으로 휘루네에 찾아왔다.
아드님이 휘루네 현관문에 들어서자마자 미나를 불렀다.
“민…, 민…, 아빠야…!"
그리고 ‘냥냥~ 냐앙!!’ 소리를 지르며 플란다스 개처럼 뛰어오는 미나를 보게 되었다.
미나아빠와 미나는 한참을 울었다. 1년 반만의 상봉이었다.
“미안해…. 민…. 아빠가 미안해…. 자리 잡고 금방 데려가려고 했는데…, 정말 미안해."
미나의 이름은 '민'이었다.
미나는 ‘꾹꾹이’, ‘골골송’, ‘얼굴 핥기’ 같은 고양이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애정표현이란 애정표현은 여한 없도록 해댔다.
아드님의 손짓과 어투에서도 미나에 대한 무한사랑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죽음을 기다리는 병든 아기 고양이
울음을 멈추지 못한 아드님은 미나와의 만남을 꺼이꺼이 울며 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못했던 미나아빠는 독립을 했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우울증까지 생겨 삶에 의지마저 희미해지던 날 우연히 펫샵을 지나게 되었다.
거기서 병들어 죽어가던 새끼 고양이 미나를 보게 되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현재 모습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펫샵 주인은 저 고양이는 병들어서 곧 죽을 거라며 다른 건강한 아이를 데려가라고 했다.
미나아빠는 그 순간 이 아이여만 한다는 확고한 감정에 사로잡혔다고.
1년 가까이 극진히 병간호 끝에 호전되었고 그렇게 둘이서 행복한 6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불과 2주를 남겨놓고 회사에서 갑자기 해외발령을 내는 바람에 베트남으로 출국할 수 밖에 없었다.
미나아빠는 자식과 같은 미나를 누군가에게 쉽게 맡길 수가 없었다.
결국 연락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를 몇 년만에 만나 미나를 부탁했다.
미나가 부자간의 연을 다시 이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나가 아니었다면 미나아빠는 오랜 시간 아버지를 뵙지 못한 채로 부고를 받았을지도.
유언
나는 미나아빠에게 어르신의 유언을 전해드렸다.
"미나가…. 할아버지와 저를 친구의 인연을 맺어줬어요.
매일 밤 할아버지와 전화 통화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는데 그 마지막 통화가 저여서….
유언이었을 것 같아 할아버지 말씀 전해드려요.
항상 엄하고 감정에 있어서 인색한 부모였고,
특히 아드님께 미안한 맘이 많이 남는다고 하셨어요.
두고 간 미나가 아들과의 관계를 융화시켜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하셨어요.
미나로 인해 생애 끝자락에서 사랑을 하는 방법을 그리고
사랑받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고도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미나 때문에 길고양이들 밥을 주셨나봐요.
길고양이를 함부러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싫다고 하시더라고요.
미나가 혹여나 길에서 살게 될까봐 마지막까지 미나를 걱정을 하셨어요.
그리고 여러차례 제게 유언이라 생각하고 꼭 들어달라고 하셨는데요.
미나를 다른 곳에 입양 보내지 말고 제가 돌봐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쉼터 휘루네에서 친구들과 뛰어 놀게 해달라고…"
미나아빠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나는 이런 아드님을 쉼터란 곳이
아이들에게 좋을 수만은 없지만 그래도 휘루네는 묘권을 가장 최우선하는 곳이라고 위로했다.
서울우유 그리고 담배향
미나는 살도 제법 오르고 기름을 발라놓은 것처럼 털에 윤기도 돌았다.
마르고 부스스했던 처음과 달리 귀티가 났다.
어르신은 시력이 좋지 않고 자유롭게 손도 쓸 수 없어
제대로 미나를 관리해주지 못한 것에 늘 미안해했다.
어르신의 떨리던 음성 그리고 뿌연 안경 너머로 보이던 붉게 충혈된 두 눈이,
말쑥해진 미나를 볼 때마다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올랐다.
“박선생…. 미안해요… 노인네라…. 멋진 우리 미나 털 한번 제대로 손질 못했어요.
우리 미나 이런 노인네에게 안 오고 좋은 주인 만났으면 털도 엉키지 않고 매일 사랑 받으며 살았을텐데….
내가 너무 박선생에게 짐만 주는 것 같아 미안함 뿐이예요….”
“예뻐진 미나를 보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이런 생각이 들때면 어김없이 가슴이 뻐근해왔다.
미나는 또 서울우유와 담배냄새를 무척 좋아했다.
서울우유는 어르신이 하루 한 번 미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고급스러운 음식이었다.
미나에게 줄 우유를 사기 위해 당신의 라면값을 아꼈다.
성장기 어린이에게 우유가 좋다니 미나 건강에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또 간혹 휘루네로 담배를 피우는 음식 배달원이나 인터넷 기술자가 오면 미나는 돌변했다.
달려가 그들의 얼굴을 비비고 무릎에 꾹꾹이를 하며 끙끙 울었다.
우유를 줄 때마다 그리고 담배향이 날 때마다 끼융끼융 울어댔다.
누가 주인도 못 알아보는 고양이라고 했던가.
이렇게 가슴으로 추억을 기억하며 그리워하는 고양이인 것을.
미나의 우울증
아드님은 이후로도 두어 차례 더 휘루네에 와서 미나를 보고 갔다.
나와 메일도 몇번 주고 받았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답신이 오지 않았다.
지속되는 단체생활에 미나도 외로움을 타는 듯 했다.
쉼터가 인간세계로 치면 고아원 같은 곳이기에
외동딸처럼 한 사람의 사랑을 듬뿍 받은 미나에게 오랜 단체생활은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이런 문제로 미나와 다른 고양이들은 싸우기 일쑤였다.
유언처럼 미나를 내게 부탁하던 어르신의 말씀 때문에 좀처럼 입양을 추진할 수도 없었다.
행여 미나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 것 같았다.
설상가상 미나는 어린 시절 펫샵에서 앓았던 허피스 감염으로 인한 구내염증으로 전체 발치를 해야했다.
“정말 할아버지만큼 미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더구나 이까지 없는 이 고양이를…. 미나가 앞으로 더 의기소침해질텐데….
할아버지 제발 길을 열어주세요…”
늘 그러했듯 내가 할 수 있는 건, 간절한 기도뿐이었다.
한 가족의 소중한 반려동물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아니 그보다 이것은 미나에 대한 할아버지의 사랑의 힘이었을 것이다.
나와 오랜 인연이 있는 지인의 지인이 미나에 관심을 보였다고.
그 지인도 네덜란드에서 왔지만 한국에서 유기된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그 아이 역시 전체 발치를 해서 케어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집에 도착하니 네덜란드 출신의 행운이라는 고양이와
미나의 오빠가 되어주겠다며 결의에 찬 지석이라는 꼬마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줬다.
그리고 몇 주 후 기다리던 미나의 소식이 날아왔다.
서열 1위가 되었고, 지석 아버님을 유난히 잘 따라서 꼭 옆에서 팔베개를 하고 잔다고.
매일 지석이와 함께 서울우유를 맛나게 나눠 먹는다고.
하루 한번 정성스러운 빗질을 해주고 있다고.
사진 속 미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토록 내가 바랐던 사랑을 충만히 받는 모습으로.
그토록 할아지가 바라 마지아니하던 한 가족의 소중한 반려동물로.
휘루’ s story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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