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CATMOM
식당 고양이 이쁜이
흔한 길고양이에 불과했다. 외국서는 꽤나 인기 있는 근사한 털을 가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그런 길고양이뿐이었다. 집에서 살았다면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을테지만 길에서는 음식물 쓰레기통이나 기웃거리는
볼품 없는 길고양이일뿐이었다.
이 쁜 이 집
영하권의 추운 날씨였다. 택시는 제법 큰 식당 3~4개가 모여 있는 너른 대지에서 멈췄다.
필시 이 곳은 얼마 전까지 나대지였으리라. 대지는 네 개의 차선에 의해 완전히 둘러싸여져 있었다.
차선을 울타리 삼아 자리를 잡고 있는 식당건물 중 몇 채가 새것이었다. 흔한 서울 근교의 풍경이다.
주변이 산야였던 지난 날은 길고양이에게 그나마 살기 좋은 시절이었을 테다.
소선 씨가 일하고 있는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앞치마를 두른 소선 씨는 식자재를 대는 사장님과 함께
실내 한 편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이쁜이 집’이었다.
바닥에 장갑이며 드라이버, 접착 테이프, 케이블 타이 따위가 널려 있었다. 식자재 운반에 쓰이는
플라스틱 바구니를 뽁뽁이(포장 에어캡)로 단단히 에워싸은 다음 앞은 바람이 덜 들어가면서
이쁜이가 쉽게 드나들 수 있게 커텐을 쳤다. 또 비바람이 내부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상단에
스티로폼 보드를 고정시켰다. 식자재 바구니는 한쪽에 방석을,
다른 한쪽에 물과 사료를 놓기에 아주 적합한 사이즈란다.
꽤 전문적이다. 소선 씨는 이것을 번쩍 들고 밖으로 나가더니 주방 옆 화단에 놓았다.
식자재를 대주는 사장님과 함께 이쁜이 집을 만들고 있는 소선 씨.
추 정 나 이 9 살
이쁜이는 이 동네에서 8~9년째 길생활을 하고 있는 카오스 코트의 암컷 고양이다.
우리나라 길고양이 평균 수명이 2~3년인 것에 비춰보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식당이 개업한지 8년째며
이때부터 주위를 맴돌았다 하니 진짜 이쁜이 나이를 알아내고자 나서는 일은 불필요한 행동인 듯 싶다.
“그때도 단독주택에서 개를 키우며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턱시도 고양이가 집 안으로 들어와
개 밥을 먹고 있더라구요.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사람이 사는 집까지 들어왔을까 안쓰러웠어요.
이후부터 마당에 고양이 밥을 놓기 시작했어요. 캣맘은 그때부터였어요. 벌써 4~5년이나 됐네요.”
소선 씨는 현재 아버지와 함께 서울에서 칼국수 집을 운영하고 있다.
몇 년 전만까지만 해도 식당 근처에 폐차업의 작은 사무실이 있어서 늘 주변에 낡은 화물차들이 있었다.
화물차는 길고양이들에겐 나쁘지 않은 은신처였다.
이곳에서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돌보는 모습도, 동네 고양이들이 몸을 숨기고 주변을 정탐하는 모습도
일상의 조각일뿐이었다. 그런데 낙지집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길고양이들을 보고 있자니
측은한 마음이 들더란다. 차 밑에 물과 사료를 놓아뒀다.
겁이 많은 이쁜이도 그 사료가 먹고 싶은 배고픈 길고양이 중 한 마리였다.
“새끼 고양이를 돌보는 어미 고양이에게 밥을 먼저 주기 시작했어요.
이날도 여느 때처럼 차 밑에 밥을 놓고 있었어요. 이쁜이는 그런 저를 늘 먼 발치에서 바라 보고만 있었죠.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근데 그날은 갑자기 이쁜가 제 뒤에서 팔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며 들어오는거예요. 순간 놀랐지만 울컥해지더라고요. 얼마나 오랫동안 저를 지켜봤을까요. 배고픔을 참아가며….”
식당 주변에는 폐차 업의 작은 사무실이 있어 늘 낡은 화물차들이 있었다. 길고양이들이 숨기에 좋은 장소였다.
밥 값 하 는 이 쁜 이
두어 달이 지나자 소선 씨가 캣맘이라는 사실을 식당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
적어도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아버지를 빼면 말이다.
일하시는 아주머니들도 소선 씨의 캣맘활동에 합류했다. 손님들이 먹다 남긴,
어차피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새우들을 정갈히 모아뒀다가 소선 씨에게 건넸다.
껍질을 까서 물에 씻어 사료에 얹혀 줬더니 정말 잘 먹더란다.
해가 세번이나 바뀌는 동안 야옹이, 나비, 만두, 복이 등 여러 마리의 길고양이들이
소선 씨가 주는 밥을 먹으며 고된 길고양이 삶을 달랬다. 길고양이와의 이별이 언제나 그렇듯,
한 마리 두 마리 안녕이라는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의 고양이 무리에서 소선 씨 곁에는 이쁜이만
남게 되었다. 겁이 많아 늘 몸을 숨기기 바빴던 이쁜이가 점점 거리를 좁혀왔다.
그리곤 식당 사람들에게 온 몸으로 고마움과 사랑을 표현했다.
집고양이처럼 배를 뒤집어 보이고 몸을 비비고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이 되면
주방 쪽으로 와서 야옹거리며 새우를 달라고 조르는 능청도 부렸다. 주방 아주머니 뒤를
보드가드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정을 붙였다. 이러는 동안 소선 씨는 이쁜이로부터 쥐와 새 선물을
여러 번 받는 신세를 지기도 했다. 이쁜이가 식당 고양이가 되면서 서식하던 쥐들이 알아서
다른 식당으로 가버렸다니 이름대로 참말 이쁜이다.
“예전엔 쥐가 많아 덫을 꼭 놓아야 했어요. 그런데 이쁜이가 식당에 살게 되면서 쥐가 완전히 사라졌어요.
아버지도 “밥값은 한다”며 싫어하는 마음을 조금은 누그러트리셨고요.”
식당 고양이가 된 이후 이쁜이는 소선 씨에게 쥐와 새 선물을 여러 번 하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살 아 있 는 모 든 것 은 아 름 답 다
사람 나이로 치면 50대가 된 이쁜이. 가끔 털 한 부위가 뭉쳐 딱딱해졌다가 빠져 ‘땜방’ 같은 게 생기는데
소선 씨는 이게 영 꺼림직하다. 다른 고양이들이 그러했듯 이쁜이와의 이별도 어느날 느닷없이
찾아올 것 같은 느낌이 요즘 부쩍 든단다. 남은 생만이라도 집고양이로 편하게 살았으면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접어버린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에.
“어느 책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라는 구절을 읽은 적 있어요. 이쁜이의 삶이 그런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행복을 주네요. 이쁜이가 제게 준 행복만큼 전 돌려주고 있지 못해
늘 미안하지만요. 캣맘이 되면서 6마리 정도를 구조해 입양을 보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특히 장애가 있다면…. 그래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작은 쉼터 같은 것을 하나 열고 싶어요.
이쁜이처럼 나이 많은 길고양이도 장애가 있는 고양이도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그런 곳요.”
날씨가 추운 탓에 끝내 이쁜이는 그날 나타나지 않았다. 아쉬운대로 빈 집을 몇 컷 찍었다.
이 집에서 이쁜이가 이 겨울도 잘 나길 바라며.
주방 옆 화단에 설치된 이쁜이 집.
‘I’m a CAT MAM/ CAT DADD의 주인공 소선 님께 자묘부터 성묘까지 급여할 수 있는 고품질 프리미엄
고양이 사료 ‘캣차우’ 7.8kg 그리고 고보협 자체 제작의 ‘에코백’을 선물로 드립니다.
닉네임 '소선'으로 캣맘활동을 하고 있는 박경민 씨는
네비어 블로그를 통해 자신이 돌보고 있는 동네 고양이들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pekkomi
어차피 남아서 버리는 음식 조금만 짬내면 배고픈 냥이들에게 한끼 밥이되고 그들에게
인간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걸 알게 해줄수 있지만...언제쯤이나 이땅의 작은 생명은 맘편히 밥 한끼 먹을수
있을지요.....이쁜이와 소선님이 오래행복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