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2[일하는 고양이 취재기]건담이 지키는 작업실 하로냥님 편

by 고보협 posted Feb 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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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고양이 취재기 첫번째. 하로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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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 Haro: 누구냐옹.

지각이 습관인 기자에게 아직 새파랗게 젊은 고양이가 반말 찌끄러기로 기부터 죽인다. 

KOPC reporter: 인간 김대영 실장님 만나뵈러 왔습니다만….

젊은 고양이는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하는 낯선이를 홀대한다. 말은 먼저 걸어 놓고선 왼쪽 귀만 안테나 돌리듯 슬쩍 움직일 뿐 소파에 앉아 창 밖만 뚫어지게 바라본다. 

하로1.jpg

Director Kim: 아, 기자님 오셨군요.
KOPC reporter: 휴대폰이 방전되는 바람에…, 죄송합니다. 이 냥님께서 차세대 고양이 실장님이로군요.
Director Kim: 그렇습니다. 듣는 고양이 귀도 있고 하니, 근처 조용한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기시죠.

출 생 의  비 밀
KOPC reporter: 하로냥님과 처음 했던 약속과 달리 평직원 직책을 줬다고요.
Director Kim: 어쩔 수 없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너무 진급이 빠르지 않습니까. 저도 실장 다는 데 몇년이 걸렸습니다. 고생도 얼마나 많이 했다고요. 처음부터 실장 직급을 주는 건 아무리 고양이님이라 해도 너무 날로 먹는다는 기분이었습니다.
KOPC reporter: 하로냥님과는 충분히 상의된 부분인지요.
Director Kim: 입사할 때부터 회사 돈을 너무 많이 써서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이셨어요. 몸이 안 좋으셨거든요.
KOPC reporter: 자세히 좀 말씀해주시죠. 하로냥님 굉장히 있어 보이던데, 전에는 뭘 하던 냥님이셨는지요.
Director Kim: 말을 꺼내야 하나…말아야 하나…. 고민스럽네요. 장차 건담이 지키는 작업실의 비주얼도 담당하셔야 해서요. 하로냥님 스스로도 원치 않으실 것 같고...
KOPC reporter: 말씀해주시죠. 오프 더 레코드로 하겠습니다.

Director Kim: 그럼 꼭 비밀에 붙이셔야 합니다. 서교동으로 이사오기 전 작업실이 연남동에 있었을 때입니다. 건물 뒤쪽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데 고양이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어요. 다른 직원들은 듣지 못했지만 제 귀에는 분명히 들렸어요. 주변을 샅샅히 뒤져봤어요.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벽 모퉁이에 쌓인 물건더미를 들춰냈더니 코너에 앉아 계셨어요. 아… 그런데 그 모습이…. 얼굴은 눈물콧물 범벅이었고 몸은 완전히 먼지덩이 그 자체였어요. 종이박스에 모시고 급하게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 병원 의사 선생님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원하면 진료는 해보겠지만 힘들 것 같다고요. 그럼 일단 목욕이라도 시켜달라고 해서 다시 작업실로 모시고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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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PC reporter: 하로냥님이 처음 그런 모습이었군요. 굉장히 도도하고 시크하셔서, 상상도 못했습니다.

Director Kim: 마침 고양이 실장 자리가 공석이어서 계속 구묘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하로냥님은 정말 고민스러웠어요. 저희 작업실의 운영목적이 건담이님이 계속 건재하시도록 지켜드리는 거거든요. 오래 전에 전성기를 누렸던 분이시라 생각보다 업무가 고되요. 저 약한 몸으로 우리와 함께 할 수나 있을까 생각이 참 많았습니다. 특히 우리 작업실 직원들은 일본에 계시는 건담이님을 만나 뵙기 위해 해마다 일주일씩 자리를 비우거든요. 부리는 집사 없이 혼자서도 잘 지내셔야 하는데 그 부분이 제일 많이 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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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PC reporter: 그런데 어떻게 패스된 건가요. 결정적 이유가 뭐였습니까. 
Director Kim: ….
KOPC reporter: 왜 말씀이 없으십니까. 
Director Kim: 이 사실이 알려지면 정말 저희 작업실 이미지에 큰 타격이… 
KOPC reporter: 저를 믿으세요. 

Director Kim: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다 말씀 드리죠. 불쌍했습니다. 너무 불쌍해 보였습니다. 보세요. 이 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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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고 난  인 복
KOPC reporter: 냥님들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을 수 있군요. ‘고양이의 보은’이라고 해서 왜 고양이는 복을 불러온다고 하던데요. 하로냥님이 입사해서 뭐 좋은 일 좀 생겼습니까. 
Director Kim:  직접적으로 저희에게 복을 주신 건 없습니다. 그런데 하로냥님이 인복 하나는 끝내주게 타고 난 것 같아요. 요단강을 일찍 건너실 뻔했지만 저를 만나서 생명부지하셨고요. 또 친구가 수의사인 직원이 한 명 있어요. 그것도 작업실 근처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답니다. 첫 병원에서 목욕 서비스를 받고 작업실로 다시 모시고 왔을 때 이틀은 정말 고양이 별로 다시 돌아갈 것 같았어요. 그래도 우리는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온수가 담긴 페트병을 박스 안에 넣어주고 고양이 전용 분유를 사서 타 드렸죠. 허사였어요. 다 토해내더라고요.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그 수의사 친구에게로 모시고 갔던 거예요. 그런데 수액 한 방에 기사회생하셨어요. 이후 담당 의사 선생님은 무료 왕진을 하셨고요. 또 제가 아는 B 병원 선생님은 하로냥님 이야기를 듣더니 중성화 수술을 무료로 해주셨어요. 이뿐만이 아니에요. 작업실에는 다방면에 덕후인 친구들이 자주 놀러 오는데요. 나무로 가구를 잘 만드는 친구는 하로냥님을 위한 맞춤형 원목 화장실을 만들어 줬어요. 장난감이며 사료, 간식 같은 선물은 흔한 것이었답니다.  
KOPC reporter: 전생에 나라를…. 네, 고양이 실장으로서 어떤 잠재성을 보고 계십니까. 

Director Kim: 아마도 누구나 같이 일하고 싶은 냥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훌륭한 모델 냥으로서 싹수가 있으십니다. 벌써 고양이 사진 공모전에 당선되어 이태리 째 화장실도 받아오셨어요. 업무보조도 굉장히 잘 하십니다. 책상에 앉아 프라모델을 조립하다 보면 종종 부품이 바닥으로 떨어지거든요. 인간의 눈으론 도무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그런 작은 부품들 말이에요. 그런데 하로냥님이 두번이나 찾아줬어요. 그리고 성격이 굉장히 깔끔하세요. 정리벽이 있나 싶을 만큼 정리정돈을 잘하세요. 연남동 쇼윈도에 시계가 몇달 째 삐툴어져 있었는데  그것부터 바로 세우셨어요.   

 하로모델.jpg하로이태리화장실.jpg하로3.jpg

KOPC reporter:  하로냥님에게 불만 같은 건 없으십니까.

Director Kim: 출퇴근 개념이 좀 없으신 것 빼곤.... 미팅이 있는데 지각하시고… 중요한 손님이 오셨는데 낮잠 주무시고 계시고… 그래서 지난해 업무 평가에서  A-를 받으셨어요. 아직 어려서 그런거 같아요. 차차 좋아질 거라 믿어요. 

하로업무평가-최종.jpg


  <하 로 네  작 업 실>
KOPC reporter:  앞으로 하로냥님을 어떻게 육성시켜나갈 계획이십니까. 하로냥님을 위한 연금 같은 것도 마련해 놓으셨는지... 
Director Kim: 정년 퇴직하실 때쯤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직접 만든 책 한 권을 선물해 드릴 생각입니다. 그래서 지금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하로냥님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어요. 일종의 준비작업인 거죠. 작업실에서 인간과 고양이가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책으로 남기고 싶어요. 저자의 딸이 태어나 결혼하기까지 일상을 담은 사진집 <윤미네 집>처럼요. 그렇게 되면 역량 있는 냥님들의 사회진출이 더 활발해질 것이고요. 인간과 고양이들이 더 평화롭게 사는 시대가 열릴 것 같아요.    
KOPC reporter: 네, 잘 들었습니다. 하로냥님에게 드리려고 간식을 좀 가져왔는데…. 잠깐 좀 뵐 수 있을까요. 
Director Kim: 물론입니다. 가시죠. 
하로냥님은 그 모습 그대로 소파에 앉아 창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인간 실장의 등장에 예의를 갖추느라 아래로 내려온다. 낯선이가 건넨 간식이 입에 맞았는지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어 치운다.    
Cat Haro: 너도 집사로구나. 낯선 고양이 냄새가 난다옹. 
KOPC reporter:  예. 두 냥님을 뫼시고 있습니다. 
Cat Haro: … 어리숙해보이더만…, 잘하고 있다옹. 냥님들 잘 모시라옹. 


* 본 기사는 사실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고양이 하로의 일상은 페이스북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haro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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