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4 [I'm a CAT MOM] 아무래도 나는 네가 무겁다.

by 고보협 posted Apr 21,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I’m a CAT MOM


아무래도 나는 네가 무겁다.


글 사진 한국고양이보호협회 정회원 깡통 문혜정




2010. 6. 2.

고양이와 함께 살기로 삼사개월을 고민했다.

드디어 데리러 간다.

함께 살기로 결정하고 그 봄이 얼마나 들떴는지 모른다.


*비혼으로 살기로 생각하고 같이 살던 애인과 이름을 고민하고 어떤 무늬와 성격을 가진 고양이와 만날지 잠자리에 누워서 상상하기를 수십밤. 가족을 이룬다면 이런 느낌일까. 고양이를 맞이하는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이 충만했다.

내 마음대로 성별을 정할 수도, 원하던 무늬를 가진 것도 아니지만 흔하디흔한 코숏의 고등어 태비, 2개월짜리 솜털뭉치 말리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




‘말랑말랑 젤리, 밥말리의 말리’


아깽이말리.JPG



오줌을 싸기 위해 바닥을 긁는 말리를 화장실에 옮기자 쪼르륵 쉬를 싸고,

소파에 누워 있는 내 다리와 배 위로 파고든다.

역시 고양이는 영특하고 대단해. 고양이와 함께 살기로 하길 정말 잘했어.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한번 들이면 15년을 같이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고,

부지런히 화장실을 치우고 깨끗한 물을 늘 마련하고 꼬박꼬박 오뎅꼬치를 흔들며 놀아주고

아플 때 병원비 부담을 작정하고 15년여의 시간을 고양이와 함께 하기로 다짐하고 나는 마음을 다해

너와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꼬리잡기말리.jpg

(꼬리잡기 말리)

 

 

 

다섯살말리.jpg
생일이싫은말리.jpg
(5살생일말리) 
(생일이 싫은말리)


 

‘왜 그래? 속이 안 좋아?’

묻다가 이번 주는 처리해야 할 급한 일도 생각 나고 야근도 정해졌으니 다음 주에나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움직임이 느려진 것 같지만 ‘너도 이제 늙었나봐~ 할무니’하며 놀린 것은 변함없이 잘 먹고 잘 싸고 별 이상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틀 정도 밥을 먹지 않고, 눈에 띄게 움직임이 느려지자 스케쥴과 상관없이 병원에 데려갔다.

말리가 더 기다려줄 것 같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간수치가 높고 지방간이 있어 상태를 지켜봐야 하지만 상당히 상황이 안 좋다고 했다.

만약의 경우 최악의 상황도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입원을 시키고 저녁마다 병원에 방문해서 삼십분정도 눈을 맞추고 말을 거는 정도였다.

눈물이 나지 않는다.

‘나는 널 사랑하는데 왜일까? 어서 기운내 말리야’






2014. 12. 28.

일주일 입원 후 퇴원을 하고 통원을 했지만 말리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밥을 먹는가 싶다가 구석을 찾아 웅크리고 앉아 만사를 귀찮아했다.


관상용 고양이라며 자처할 정도로 손대것도 싫어할정도로 의기양양 고양이던 말리의 모습은 어디가고

앙상한 뼈를 드러낸 몸통과 꺼칠하고 푸석해진 털,

유난스런 깔끔쟁이 말리가 그루밍도 하지 않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지켜봐야 해요. 상황에 따라 이런 이런 조치를 취할 겁니다.’

말리는 코에 카테터를 삽관하고 강제급식을 하게 됐다.

눈물이 나지 않는다.

나는 무서웠다.




2014. 12. 31.

한 달간 병원을 옮겨 세 번째 병원에 입원했다. 일주일이 고비이고 여전히 코에 삽관을 한 채 급식을 하고 있다. 고비를 넘겨도 컨디션이 좋아지기 까지 입원을 해야 한다.

언제 퇴원을 할지 알 수 없다.

의료진만 보면 침을 흘리며 공포스러운 상태라 그나마 친밀한 내가 아침저녁으로 두 가지 약을 먹여야 한다. 하필 사무실 프로젝트 마무리라 미친 듯이 바쁠 때다.

나는 말리가 생사를 넘나드는 와중에도 당장 처리해야 하는 업무를 떠올렸다.

죄스러웠다.

‘이런 속물!’



말리가 스스로 밥을 먹을 때가 올까, 집에 같이 가는 날이 올까 싶었지만 입원이 보름이 되어가자 차도가 보였다. 그렇게 고대하던 퇴원일이 왔다.


말리가 퇴원하기로 한 날을 받아 놓고 병원에 범백이 돌았다.

옆 케이지에 있던 고양이가 범백 확진이 되어 집중치료실로 옮겼다. 애교가 많고 발라당을 잘하던 그 아이를 만져줬던게 엊그제다.

말리의 퇴원은 보류되고 장갑을 끼고 약을 주거나 식기를 비롯한 말리의 모든 물품은 따로 관리되었다.

수의사는 범백 확진이 되면 최선을 다하겠지만 워낙 쇠약해진 상태라 장담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힘내말리.jpg





말리가 입원할 때 경과를 지켜보던 일주일의 무서움,

범백 확진을 기다리는 시간,

나의 무서움의 정체는 분명해졌다.


나는 만약의 경우 말리의 안락사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사람이다.


고양이와 함께 살기로 한 결정은 나에게 너무 무겁고 중대한 것이었다.


귀여워서, 내가 외로워서, 애인의 선물로, 이런 이유를 가진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라 15년을 돌보고 사랑해준다는 신중한 결정이였다고 오만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함께 살기를 결정하는 게 아닌 떠나 보내야할 결정을 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나는 복잡해졌다.


고양이를 떠나보내는 것은 십몇 년 이후인 먼 미래라고 생각했지 이번 주나 다음 주가 되리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더욱이 만약의 경우 그런 결정을 내가 해야 하게 될 거라고는 말이다.

나는 이미 200여만원을 말리의 병원비로 쓴 상태였다. 앞으로 그 만큼의 병원비가 나올 예정이었다.


세 군데의 동물병원을 다니면서 왜 동물병원마다 유기된 고양이와 개들이 있는지 의아하고, 전 주인들의 야박함과 가벼움을 욕했지만 나 또한 지출 된 금액과 앞으로의 금액을 계산해보고, 바쁘게 돌아가는 사무실 업무에 치이고 아픈 고양이를 돌봐야 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하며 나는 마냥 그들과 다르다고만 할 수 없었다.

‘이런 속물!’




2015. 1. 17.

말리는 다행이 범백이 아니었고, 퇴원을 했다. 범백 확진을 받은 옆 케이지 고양이는 말리가 퇴원하던 날 별이 되었다 한다. 이제 겨우 7개월을 세상에 왔다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눈물이 났다.


말리가 입원해 있던 두 달여 기간 동안 나는 별일 없이 업무를 했다.

사람도 아닌 고양이가 입원해 있다고 아침저녁으로 업무 시간을 뺄 수도 없고 종종거리던 마음은 주변에서 이해받고 배려 받을 일이 아니었다.


다만 그 기간 동안 병원 케이지를 거쳐 갔던 여러 마리의 동물들, 세 번째 병원으로 옮기는걸 도와준 한국고양이보호협회의 위로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은 날마다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며 모험을 하는 것 같다.

우주를 품은 동그란 눈으로 나를 보고, 별것 아닌 것에 하악질을 하고

낯선 이의 등장에 다다닥거리며 숨을 곳을 찾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발라당을 하고,

골골거리며 나를 기꺼이 그들의 세계에 초대해준다.



물론 고양이와 함께 살기 위한 신중한 결정도 중요하다.

고양이와 함께 산다면 어떻게 고양이와 즐겁고, 사랑하며,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지에 대해 겹겹이 쌓이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고양이를 데려오기로한 결정보다 훨씬 무겁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결정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때가 온다면 도망치고 싶을 만큼 두렵지만 이번의 경험으로 얻은 것은 내 곁의 고양이와 오늘 하루를 신나고 즐겁게, 평온하게 보내야겠다는 거다.

아무래도 나는 네가 무겁지만 정말 정말 사랑한다.


나의 고양이 말리.



이쁜말리.jpg








비혼이란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이'를 일컫는 말이다. 미혼은 혼인상태가 아님을 뜻하지만 비혼은 혼인할 '의지'가 없음을 뜻하는 용어다.(출처:네이버지식in오픈국어)



Articles

8 9 10 11 12 13 14 15 1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