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5 [be rescued] 내 고양이의 고향은 어디인가

by 고보협 posted May 2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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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 rescued: 우여곡절 파양아가 둘째입양기

내 고양이의 고향은 어디인가


글 사진 한국고양이보호협회  깡통




서울숲가는길.jpg



4월에 서울숲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벚꽃이 지천으로 피어있고, 이제 막 연한 초록들이 올라오던 때 차창밖 서울숲을 보면서 나는 둘째고양이 나로가 생각났다.

나로는 서울숲에서 태어난 고양이다.

서울숲에서 캣맘을 하시던 분이 돌보던 고양이가 4월의 어느날 꼬물거리는 새끼들과 함께 나타났다고 한다. 나로는 그중의 한 마리였다가 흘러 흘러 나와 함께 살게 된 것이다.

서울숲이 고향인 고양이와 살게 되니, 나에게는 서울숲의 의미도 다르게 다가왔다. 좀 극성스러운 기분도 들지만 내 고양이의 흔적을 쫓고 싶었다.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다가 나와 만났을까. 간질간질거리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서울숲에 살던


‘오늘은 서울숲에 가기 딱 좋은 날씨군!’ 주말에 밀린 집안일을 하고 오후 느즈막에 서울숲으로 향했다. 집에서 가볍게 가기에는 거리가 있었지만 서울숲에 도착하자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단서는 사슴우리. 나로가족을 돌보던 캣맘은 나로가족들이 서울숲을 돌아다니다가 밤에 잠을 잘 때는 사슴우리에 가서 잠을 잤다고 했다. 차가 다니는 교차로를 갈래로 구획되어있는 서울숲중에 사슴우리 근방으로 가본다. 영역동물이라 사슴우리를 중심으로 짚어가보기로 했다.



서울숲꽃사슴.jpg


‘꽃사슴 사육장’


안내표지판이 눈에 들어오자 발걸음이 빨라진다. 꽤 여러 마리의 사슴들이 여유롭게 지내는 사슴우리에 다다르자 눈앞의 풍경에 나로가 더해진다.

나무아래에서 쉬거나 그루밍을 하고 사슴 무리 사이에서 동그랗게 몸을 말고 쌔근거리고 자거나 우다다 형제자매들과 장난을 치고, 맛동산이랑 감자(고양이 똥오줌을 일컫는 귀염귀염 버전)를 푸드득 싸댔겠구나 싶자 슬며시 웃음도 나온다. 지금은 구제역 때문에 이중으로 철망이 쳐져있어서 사슴을 가까이 할 수 없어서 아쉽다. 함께 지내줘서 고맙다고 말을 건네고 나로가족을 기억 하냐고 물어보니 사슴은 예의 꽃사슴 눈망울로 흘끗 보더니 저리 꺼지라는 듯 고개를 돌린다.


 




'나로'는 모를 '나로'의 과거


서울숲애긔나로1.jpg 나로가족.jpg


나로의 엄마는 삼색이 뒤섞인 카오스이고 새끼들은 치즈태비, 젖소가 섞여서 네 마리가 태어났다고 했다. 나로의 가족들은 천성이 개냥이들이였다.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서울숲 방문자들에게 온 몸을 비비며 접대를 했고, 그 귀여움에 홀딱 빠진 사람들은 올 때마다 캔과 간식을 조공해서 주변 쓰레기통에는 전리품처럼 캔과 간식 포장이 그득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새끼들이 태어난 그해 여름쯤에 캣맘은 나로가족의 TNR을 위해 전체를 동물병원에서 중성화수술을 시키고 서울숲에 다시 돌려보낼 계획이었다.


동물병원에 머물 때 들른 신혼부부에게 나로가 눈에 띄었나보다. 동물병원 원장은 허락도 없이 신혼부부에게 나로를 입양 보냈고, 캣맘은 화가 났지만 잘 살기를 바라며 나로를 제외한 고양이들을 서울숲에 다시 데려다놨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나와 나로는 만나지 못했으리라.


본디 고양이란 온 집안을 벅벅 긁으며 모든 살림을 스크레쳐로 쓰는게 진리인지라 아마도 입양간 집에서도 그 본색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리라. 그것이 부인이 아끼는 명품백이라도 말이다.

명품백을 긁은 죄로 나로는 파양되었다.

캣맘이 나로를 데리러 간 날에도 나로는 이동장이 없어도 남편의 품에 안겨 얌전히 사람품을 파고 드는 그런 고양이였다. 겨우 한달 남짓 지내며 얼마나 곰살맞게 굴었는지 남편은 떨어지지 않는 손을 내밀어 나로를 건넸다고 한다. 그래 인연이 아닌가봐. 그렇게 나로의 임보(임시보호)생활이 시작됐다.


두 번째는 예술가였다. 이미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며 밤작업을 주로 한다는 예술가는 작업실에서 고양이를 키우며 두달 동안 나로를 임보하기로 했다. 예술가와 고양이란 마치 원래 고유명사처럼 잘 어울릴거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잘 살거야. 고양이는 야행성이고 나로는 미친 듯이 활동적일 질풍노도 청소년묘의 시기였다. 그게 문제였던가 고양이 두 마리의 우다다로 밤작업을 할 수 없어 괴롭다며 예술가는 두달을 못 채우고 나로를 돌려보냈다.




고양이의 맛


2011년 9월 17일 그렇게 나로는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두 달의 임보만 하기로 했고, 나는 둘째를 들일 자신이 없던때라 두달 동안 잘 지내다 좋은 입양처가 있으면 가기를 바랬다.

앞서 나로식구들의 천성이 개냥이라고 한걸 기억할 것이다. 이 매력에 빠져서 조공하기를 멈추지 않은 서울숲 방문자들도 기억할 것이다.


원래 집에 있던 첫째 고양이가 엄청난 도도미를 풍기며 솜방망이로 시도때도 없이 싸다구를 때리는데 나로는 내 품에서 액체가 되곤 했다. 늘어지고 올라타고 한시도 떨어질 줄 몰라서 나는 당황했다. 고..고양이란 이런 것인가? 안아도 가만 있는 고양이라니, 하아악~ 포효하는 짐승을 키우다가 애웅애웅거리는 고양이를 만나자 나도 어쩔수 없이 녹아내렸다.


임보 한 달이 되자 마음이 정해졌다. 백치미 고양이 나로는 순박하고 멍충멍충해서 어디서나 잘 지낼것같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이런 너는 또 얼마나 어디로 돌아다녀야 할까.

‘나와 함께 살지 않을래? 좋은 사료와 고급 간식을 늘 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네가 죽을때까지는 내가 또는 믿을만한 사람(내가 먼저 죽을수도 있기 때문에 친구와 서로의 고양이를 돌봐주기로 약속했다.)이 네 곁에 있을거야. 어때? 나로야 내 둘째 고양이가 되지 않을텐가!


(윌유메리미?)’


나로가 대답했다.

‘애우우웅~~’

(나로의 눈은 내가 입은 후드티의 끈에 고정되어 있고 발은 끈을 잡으려고 휘두르고 있었지만 분명 내 귀에는 예쓰!라는 대답이였다.)




서울숲에 살고 있는


서울숲고양이2.jpg 서울숲고양이1.jpg


서울숲에 있자니 주마등처럼 나로와의 시간들이 지나가고, 나로가 밥을 먹었을만한 곳, 종종거리며 놀았을만한 곳을 둘러보면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벌써 4년이 흘러서 바뀐 것도 있을테고 나로의 흔적은 찾을 수도 없지만 내 고양이가 여기 있었다고 전해들은 이야기가 파릇파릇한 풀밭으로, 어슬렁거리는 사슴 무리로, 나로 형제자매가 태어났을지 모를 하수구로, 오고가는 사람들로 실제적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아직도 서울숲에는 고양이가 있었다.

나로가 나와 함께 살던 그해 가을부터 처음에는 나로 엄마가 사라지고, 그 다음에는 나로의 형제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돌보던 캣맘은 애가 탔지만 부디 좋은 사람들이 데려가서 잘 살았으면 하는 걱정을 하곤 했다. 나로가족이 지냈을법한 곳에서 만난 고양이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연신 애교를 부린다. TNR로 커팅된 귀와 근처 수풀에 가려진 물그릇을 보니 돌보는 캣맘이 있나보다. 또 한 마리는 나로와 똑 닮은 무늬를 가진 젖소다. 혹시 나로의 다른 형제인가? 경계심을 보여 가까이는 다가가지는 못했다.

즉흥적으로 나의 둘째 고양이가 태어나서 지내던 곳을 기행하듯 가보니 기분이 새롭다. 영역동물인 고양이가 사람에 의해 장소를 옮긴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서울숲은 그나마 맘껏 뛰어다닐 공간이 있고 안전하게 몸을 숨길 곳도 있고 차에 치일 염려 없이 지낼 수 있는 곳이였다. 만약 나의 고양이가 막다른 곳에서 학대를 당하거나 위험한 도로나 골목에서 태어나 살다 내게 왔다면 나는 선뜻 그곳을 되짚어 가볼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마음이 무너져서 갈 생각을 못 했을 것이다. 100마리의 고양이는 100가지의 매력으로 100가지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점처럼 끊어지고 희미하게 알고 있는 고양이의 과거를 실을 잡듯 따라가 보고 되돌아와 생각한다. 어디서 태어나든 어떻게 살아가든 모든 고양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길. 또 다른 묘생을 이어가는 공간에서 여러 인연들이 생기겠지만 고양이와 사람들이 부디 잘 지내길 바래본다.



나로.jpg 나로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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