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9월 6일 저녁. 지나가는 저를 힘없는 소리로 부르던 길고양이가 있었습니다. 길가에 흩어진 몇 알의 사료를 캑캑거리며 주워 먹던 안타까운 모습에 저도 모르게 응답이라도 하듯 먹이를 주기 시작했지요. 축구선수처럼 튼튼하라고 세리에 센터백 보누치 이름을 따 이름도 보누라고 지어주고요.
작은 몸집의 보누는 구내염으로 비명을 지르거나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번번이 사료를 삼키지 못했고, 항생제에 갖가지 영양제를 병행하며 돌보았지만 나날이 쇠약해만 갔습니다. 집 부근 살던 아이는 영역 다툼에서 밀려 나 먼 이웃 동네까지 쫓겨 다니며 힘센 고양이와 야박한 주민들을 피해 아픈 몸으로 하루를 겨우 연명해 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일을 놓은지 오래라 치료해 줄 형편이 안돼 매일 습식 캔과 사료를 빻은 죽 한 그릇 내미는 것 말고는 달리 줄 것이 없어 항상 마음이 무겁고 쓰라렸습니다. 같이 돌보는 캣초딩이 밥을 뺏어 먹고 심술궂게 냥펀치를 날려도 미동도 없는 착한 보누가 너무 짠하고 불쌍했어요.
추워지면서 죽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되었고 이대로 두면 죽을 거 같아 1년 넘게 망설인 치료를 결심, 만난 지 466일 만에 구조에 성공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 하루 출석에 빠지지 않고 주민들과의 불화로 밥 장소를 옮겨도 금세 찾아오는 총명하고 온순한 아이지만, 예민하고 절대 곁을 내주지 않아 단 한 번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한 제가 경험 없이 혼자 진행하기에는 모든 과정이 다 녹록지 않았어요. 고보협에서 통 덫 대여받고 치료비도 일부 지원받기로 하여 구조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간 것은 사실입니다. 현실적으로 큰 힘이 되었어요. 회원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두 달 넘게 시도했던 포획을 지난 12월 16일 마침내 성공하여 목동 하니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입속을 보니 예상대로 잇몸이 엉망이었고 치주염으로 양쪽 볼과 목구멍까지 염증이 번져 구내염이 심한 상태였습니다. 보누는 3.2kg 체중의 귀 커팅 없이 중성화된 5~6세 추정 수컷. 밥 먹으러 오는 다른 고양이들과 특별히 사이가 나쁘지는 않지만 묘하게 섞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유기묘 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드네요. 지난 19일 앞니와 송곳니를 제외하고 전발치한 상황입니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앞니 쪽 치아는 살려두는 방향으로 치료를 진행한 거 같아요. 입원 후 며칠 동안 거의 먹지를 않아 마음 졸였는데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경과를 지켜보며 회복 중입니다. 먹을 수 없어 서서히 굶어 죽게 되는... 길고양이에게 가장 치명적이고 가혹한 구내염과의 싸움을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새 출발을 할 보누를 상상하면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행복한 고양이가 되어 오독오독 건사료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날이 기대되네요. 퇴원하면 이후의 모습을 또 올리겠습니다.
12월 16일 통 덫 구조 후 병원에 도착
12월 17일 입원 1일 경과
12월 18일 입원 2일 경과, 전혀 먹지 않아 기운 잃은 모습
12월 19일 발치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며
발치 전 보누의 치아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