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 _고경원 칼럼 '가족이니까'>

by 담당관리자 posted Dec 2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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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면 기대고 싶은 엄마와 고양이, 《가족이니까》

내 어머니는 자식이 셋인데도 아직 손주를 보지 못했다. 가장 먼저 결혼한 오빠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고, 나는 처녀가장 노릇을 하다 어영부영 마흔을 넘긴 비자발적 미혼 상태다. 남동생 역시 먹고살기 바빠 결혼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손녀 노릇은 첫째 고양이인 스밀라가 맡게 되었다.

추정 2살일 때 우리 집으로 와서 12년을 함께 살았으니 스밀라도 14살을 훌쩍 넘긴 노묘라, 마냥 손녀딸 같지만은 않아서 어머니는 ‘시고양이’ 모시며 사는 것 같단다. 새벽 서너 시면 자는 사람을 깨워 밥그릇 앞으로 데려간 다음 밥 먹는 걸 봐 달라고 요구한다. 고양이 때문에 새벽잠을 설친다며 하소연하시지만, 그 푸념에는 웃음기가 배어 있다. 어머니께 스밀라를 돌보는 일은 만년의 소소한 낙이다.

 

 

 

 

완고한 어르신의 마음을 바꾸는 고양이의 힘

어머니도 처음부터 고양이를 귀여워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무서워했는데 거기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오래 전, 어머니가 시집살이를 할 무렵 부엌에 들어온 고양이를 시어머니가 쫒아낸 적이 있었단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찾아온 고양이에 놀라 시어머니가 쓰러졌고,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일이 있은 뒤로 어머니는 앙심을 품은 고양이 탓에 시어머니가 쓰러졌다 여겼다.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아무 인과관계 없는 일 같지만, 그때만 해도 ‘고양이는 영물’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고양이 전문 작가로 일하는 딸을 지켜보며 조금씩 마음을 여셨다. 결정적인 계기는 임시보호로 우리 집에 왔던 스밀라가 눌러앉으면서부터였다. 차츰 고양이를 귀여워하게 된 어머니는 새벽기도 다니는 길에 길고양이 사료를 챙겨줄 만큼 애묘인이 되셨다.

이미 가치관이 굳어져버린 성인의 생각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오죽하면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하지만 고양이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게 아니라 마음을 움직인다. 오래된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허물어뜨리는 어려운 기적을 일으키는 것도 고양이다. 고양이에 대해 편견을 지닌 노년층의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지만, 고양이의 매력에 한번 빠지면 친자식 대하듯 마음을 다해 돌보는 것도 어르신들이다.

 

 

 

이 할머니의 ‘랜선 손주’가 되고 싶다

최근 출간한 정서윤 작가의 성묘 입양 에세이 《가족이니까-보고 있어도 그리운 엄마와 고양이》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의 아버지는 원래 길고양이라면 질색하는 분이었다. 당신이 아끼는 텃밭을 길고양이들이 어지럽히거나 똥을 싸고 달아난다는 게 이유였는데, 길고양이 순돌이가 가족이 되면서부터 독불장군 같던 아버지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급기야 동네 길고양이들의 먹을거리를 걱정하는 열성 애묘인으로 거듭난다. 작가의 어머니와 순돌이 사이가 유독 다정한 것을 부러워하던 아버지는, 사위가 키우던 젖소무늬 고양이 꽃비를 당신 편으로 삼고 흐뭇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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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드는 동안 어머니와 순돌이, 아버지와 꽃비의 찰떡궁합이 사랑스러운 가족의 초상을 들여다보며 내내 행복했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노부모의 집은 그야말로 평범한 공간이다. 오래된 주택에 하나쯤 있을 법한 자개장롱, 항상 펼쳐진 이불에 편안하게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부모님, 그리고 그 사이에 찰떡처럼 붙어 떠날 줄 모르는 고양이 형제들. 너무나 친숙해서 그리운 그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그저 남의 고양이 가족이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니, 고양이가 지닌 치유의 힘은 얼마나 강력한지! 연로하신 어머니의 팔을 꼭 붙들고 잠든 꽃비나, 그윽한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는 순돌이의 얼굴을 보노라면 절로 웃음이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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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별하더라도 지금은 힘껏 사랑하기로

힘들 때 의지하고 싶은 얼굴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가장 먼저 어머니와 고양이가 떠오른다. 둘은 참 많이 닮았다. 무심한 듯하지만 다정하고, 세상 누구보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이것만은 변하지 않으리라 확신하는 건 엄마와 고양이의 큰 사랑이다. 아무리 어리석은 행동을 해도 말없이 지켜봐주고, 그저 내가 잘되기를 바라며 한결같이 응원해주는 가족의 품에서 가장 크게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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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소중한 가족들과 언젠가 헤어져야 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연애와 담 쌓은 지 십 수 년이 되어가는 요즘은 독거노인 문제나 고독사 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남 일 같지 않아서, 가족들이 떠난 후의 삶을 생각하면 벌써 마음이 스산해진다. 특히 성묘로 입양한 스밀라와 하리는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어서, 언제까지 이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슬퍼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와 비슷한 연배에 성격도 비슷한 저자의 글을 읽으며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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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여린 생명이지만 반려동물 역시 가족임이 분명하다. 그들과 함께하는 일상 속에서 위안도 얻고 날마다 배우며 살아간다. 세월이 흘러 언젠가 엄마와 고양이들이 내 곁을 떠나더라도, 함께한 시간 덕분에 삶이 더욱 충만해졌음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세상에서 어떤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은 죽었을 때가 아니라, 완전히 잊힐 때라고 한다. 우리가 가족으로 만나 함께한 시간들을 잊지 않는다면, 그 기억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함께 있을 수 있다. 그들이 더는 내 곁에 없을 때도, 힘들 때마다 그 기억의 힘이 나를 일으켜줄 거라고 믿으며 성급히 이별을 염려했던 마음을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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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고경원

고양이 전문출판 ‘야옹서가’ 대표. 2002년부터 길고양이의 삶을 기록하며 국내외 애묘문화를 취재해왔다. 저서로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2007),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2010), 작업실의 고양이》(2011),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2013), 《둘이면서 하나인》(2017) 등이 있다. www.instagram.com/catstory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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