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 _고경원 칼럼 '일본 고양이의 날, 유시마 네코마츠리를 가다'

by 담당관리자 posted Feb 27,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일본 고양이의 날, 유시마 네코마츠리를 가다

일본에서 가장 다채로운 고양이 행사가 열리는 달은 2월이다. 일본 고양이의 날인 2월 22일이 있기 때문이다. 숫자 2를 뜻하는 に(니)가 세 번 겹쳐진 발음, ‘니니니’가 고양이 울음소리‘냥냥냥’과 비슷하게 들려서 이 날을 고양이의 날로 제정했다고 한다. 일본 고양이의 날을 맞아 열린 유시마 네코마츠리(湯島ねこまつり)를 돌아보았다.

 

 

 

1.JPG

유시마 네코마츠리를 처음 기획한 고양이 잡화점 ‘오칸지루시’ 앞. 참여 점포마다 노란색 깃발을 세워 빨리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지역 부흥을 위해 시작한 고양이 축제

2015년 9월 처음 시작된 유시마 네코마츠리의 시작은 소박했다. 보호묘 출신 고양이를 키우는 주인장이 운영하는 고양이 잡화점 ‘오칸지루시’, 보호 고양이 카페 ‘네코 리퍼블릭’, 그리고 ‘사카노우에 카페’ 3곳이 전부인 행사였다. 그러나 그해 9월 18일부터 27일까지만 열릴 예정이던 첫 축제 반응이 뜨거워 10월 4일까지 연장됐고, 이후 일본 고양이의 날이 있는 2월에도 축제를 열기로 확정하며 지역 고양이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제8회 행사인 올해 2월에는 14개 점포와 1개 신사가 참여했다.

 

 

0.jpg

고양이 잡화점 ‘오칸지루시’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는 등신대 표지판.

 

 

 

 

고양이 축제의 목적과 방식은 주최측이 누구인가에 따라 다양해진다. 길고양이 인식 개선을 지향하는 행사도 있지만, 대개 유시마 네코마츠리처럼 무겁지 않은 문화 행사나 체험 프로그램, 판매 행사를 중심으로 열리는 곳이 많다. 평소 고양이에 별 관심은 없었어도, 축제로 방문객이 늘어나면 고양이를 대해 다시 보는 점주들도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아 ‘고양이는 좋은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는 인식을 전파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작용하는 축제에는 지역 주민과 점포의 동의가 필수적이기에, 고양이 축제로 인한 실익이 지역 주민과 점주, 방문객 모두에게 고루 돌아가는 방향으로 기획하는 것이 좋다.

 

 

7.jpg

아틀리에 숍 ‘bollingen’에 전시된 고양이 가면들. 미리 준비된 다양한 재료를 조합해 고양이 털 팔찌를 만드는 워크숍도 열렸다.

 

 

 

 

 

참여하는 재미가 있는 스탬프 랠리

고양이 축제를 찾아갈 때 관심 있게 보는 또 다른 점은 축제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유시마 네코마츠리에서는 각 점포마다 네코마츠리 한정 이벤트와 행사를 여는데, 참여 의욕을 불타오르게 만드는 것이 바로 스탬프 랠리다. 참여 점포 14곳에서 나눠주는 축제 리플렛은 지도이자 스탬프 랠리 용지를 겸한다. 리플렛은 축제 시작 한 달 전부터 각 점포에 비치하는데, 축제의 존재를 몰랐다가 해당 가게에 우연히 방문한 사람도 ‘축제 때 맞춰서 이 동네에 다시 와 볼까?’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6.JPG

기타 전문점 ‘사운드 나인’의 한정 제작 기타. 현 위를 걷는 고양이를 아로새긴 것이 이채롭다.

 

 

 

축제 참여 점포가 모두 고양이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업종은 아니지만, 축제 기간에만 참여할 수 있는 한정 프로그램이나, 그때만 맛볼 수 있는 한정 판매 메뉴가 있어 눈길을 끈다. 이를테면 평소 금속공예 장신구를 판매하는 숍에서 고양이 털 팔찌 만들기 워크숍을 연다거나, 이탈리안 음식점에서 고양이 모양으로 오린 김 조각을 그릇 테두리에 장식한 파스타를 판매한다거나, 카페에서 축제 한정 고양이 쿠키를 곁들인 커피나 케이크를 판매하는 식이다.

 

 

 

5.jpg

일본 전통음식점 ‘사보 마츠오’의 디저트 모나카. 마네키네코 모양 껍질과 팥이 따로 나와서, 직접 팥을 넣어 먹을 수 있게 했다.

 

 

8.jpg

커피전문점 ‘이글 카페’의 고양이 테마 초코케이크. 평소 꼭 고양이와 관련된 콘텐츠를 다루지 않더라도, 다양한 한정 메뉴로 손님을 이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곳은 보호 고양이 카페 ‘네코 리퍼블릭’ 도쿄 오차노미즈점이었다. 네코 리퍼블릭은 보호묘 출신 고양이들이 입양을 기다리는 체인점식 카페다. 일본 전역에 카페 6곳과 스토어 2곳을 운영하는 기업이며, 도쿄 오차노미즈 점도 그 중 하나다. 카페의 목표는 ‘2022년 2월 22일까지 고양이 살처분이 없는 도쿄를 만드는 것’. 상업적 운영을 하는 체인점 형식의 기업이지만 ‘착한 가게’를 지향한다. 이곳은 제1회 유시마 네코마츠리부터 참여한 세 점포 중 하나이기도 하다.

 

 

 

3.JPG

보호묘 카페 ‘네코 리퍼블릭’ 도쿄 오차노미즈점. 입양을 기다리는 보호 고양이들과 함께 놀아줄 수 있는 공간이다.

 

 

 

 

카페에 입장할 때는 패스포트를 주는데, 입국 기록(비자 스탬프 수)이 늘어날수록 혜택도 증가한다. 네코 리퍼블릭에서는 고양이와 그냥 놀아줄 수도 있지만, 지역 고양이 보호단체에서 가족이 필요한 고양이로 추천받은 아이들의 입양도 가능하다. 카페 내 고양이는 모두 입소 전 혈액검사와 백신접종을 완료하며, 입양 희망자는 상담을 거쳐 심사 기준을 충족한 사람에 한해 계약서 작성 후 입양할 수 있다. 입양 후에도 2주간의 관찰 기간이 있으며 이 기간 동안 문제가 없어야 입양이 확정된다.

 

 

 

4.jpg

버려졌거나 아픔이 있던 고양이들은 네코 리퍼블릭에서 마음을 치유하고 새 가족을 찾아간다.

 

 

 

 

 

고양이 축제만을 위한 화폐 ‘니보시’

유시마 네코마츠리 참여 점포에서 물건을 구입하면 스탬프를 찍어주는데, 3번째, 7번째, 11번째 찍을 때마다 고양이 축제 전용 통화인 ‘니보시’를 증정한다. 이 고양이 지폐가 꽤나 매력적이다. 스탬프를 받기 위한 최소 구매 금액은 제한이 없고, 얼마짜리 물건을 사더라도 찍어준다. 100니보시, 300니보시, 500니보시의 총 3종이 있으며, 1니보시는 1엔의 가치가 있다. 다만 니보시는 받은 점포에서 바로 쓸 수 없고 다음 스탬프를 찍은 점포에서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 니보시는 축제가 종료된 후에도 3월 말까지 쓸 수 있다.

 

KakaoTalk_20190228_113518144.jpg

게마다 개성이 다른 스탬프를 모으다 보면, 고양이 지폐 ‘니보시’를 받을 수 있다. 

 

 

 

14점포의 스탬프를 다 모으면 이벤트 오리지널 상품을 증정하지만, 스탬프 랠리를 꼭 완수하고 말겠다는 열혈 애묘인이 아니라면 축제 관람에만 하루를 꼬박 투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축제 점포를 돌아보니, 총 14곳 중 절반인 7곳을 도는 데만 반나절이 걸려 모든 곳을 돌아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점포 간의 거리가 다소 떨어져 있어 이동 시간도 적지 않아서다. 업종이 다양하고 점포가 많을 경우, 동선과 소요 시간을 명기한 코스를 제시해 소요 시간과 함께 안내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천 코스를 만든다면, 각 참여 점포가 소외되지 않도록 동선을 짜는 것도 중요하다.

 

 

 

9.jpg

참여 점포를 소개하는 리플렛은 스탬프 랠리 용지도 겸한다. 

 

 

 

 

 

2019년 9월 9일, 제11회 한국 고양이의 날을 준비하며

일본 고양이 축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2007년 여름 세계 애묘 문화를 취재하면서부터였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 애묘 문화가 발달한 일본은 흥미로운 연구 대상지였다. 살아있는 고양이를 위한 축제부터 복고양이 인형인 마네키네코를 위한 기념일, 길고양이 보호를 목적으로 한 행사 등 같은 고양이 축제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취지도 다양했다. 그 무렵 생각했다. ‘한국에도 고양이의 날이 생긴다면 길고양이와 유기묘 문제에 대한 대한 인식 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2009년 9월 9일 시작한 것이 한국 고양이의 날이었다.

 

 

2.JPG

잡화점을 가득 채운 고양이 테마 상품들. 일본 전통인형인 코케시에 고양이 모습을 접합한 ‘네코케시’(왼쪽 하단)가 귀엽다. 

 

 

아홉 개의 목숨을 가졌다는 고양이를 상징하는 숫자 아홉 구(九), 그들이 오래오래 살아남길 바라는 오랠 구(久). 이 두 글자의 상징성이 모여, 생명을 구하는 구할 구(求)의 뜻을 담길 바라며 시작한 한국 고양이의 날. 홍대 인근의 카페에서 첫 행사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작년에 10회를 맞이했다. 특히 11주년인 올해 행사는 9가 세 번 겹치는 상서로운 해다. 여러 고양이 축제를 견학하며 쌓은 경험만큼, 한국에서도 다채로운 행사로 애묘인들을 찾아가보려 한다.

 

 

 

 

 

야옹서가.jpg

 

글‧사진 고경원

고양이 전문출판 ‘야옹서가’ 대표. 2002년부터 길고양이의 삶을 기록하며 국내외 애묘문화를 취재해왔다. 저서로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2007),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2010), 작업실의 고양이》(2011),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2013), 《둘이면서 하나인》(2017) 등이 있다. www.instagram.com/catstory_kr

 


Articles

7 8 9 10 11 12 13 14 1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