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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반려로봇, 그리고 고양이

 

부모님의 반대로 고양이를 키울 수 없던 2000년대 초반, 진짜 고양이를 닮은 로봇이라도 곁에 두고 싶어서 검색하던 때가 있었다. 때마침 1999년 소니에서 출시한 로봇 강아지 아이보(AIBO) 소식에 언젠가 진짜 같은 로봇 고양이도 나오겠지하는 기대를 부풀렸다.

한데 무려 25만 엔에 달하는 비싼 가격도 엄두가 안 났지만, 대놓고 나는 로봇이오하는 딱딱한 외양에 정이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고양이가 아니라 개란 점이 아쉬웠다. 아이보의 성공에 고무된 일본 오므론 사에서 2001년 로봇 고양이 네코로를 들고 나와 잠시 눈길을 끌었지만, 아이보만큼의 파급력은 없었다.

 

 

아이보는 출시되자마자 큰 인기를 얻어 15만 대의 판매고를 올렸지만 2006년 단종됐다. 소니가 2014년 구형 아이보에 대한 AS를 중단하면서 더는 수리받기 힘들어지자, 아이보를 키웠던이들이 모여 합동 장례식을 치르는 현상까지 생겼다. 그러나 독신 가구 및 노년 가구가 증가하면서 반려로봇에 대한 수요도 여전했던 덕분에, 아이보는 단종 12년만인 20181월 재출시되었다.

 

 

아이보 단종이 발표된 2006년 스밀라를 입양해서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로봇 고양이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졌지만, 그 뒤로도 드문드문 들려오는 반려로봇 개발 뉴스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먼저 죽을지 고양이와 먼저 사별하게 될지 알 수 없어서.

처음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할 때, 끝까지 잘 키울 자신이 없다면 아예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고양이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 고양이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할 만큼 늙고 병든다면, 혹은 그 시점이 오기 전에 다음 고양이를 맞아들이는 건 포기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 선택을 한 이후의 삶은 어떻게 될까. 처음 이 세상에 혼자 왔던 것처럼, 어차피 누구나 언젠가는 혼자가 된다. 하지만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을 아예 몰랐으면 모르되, 한번 알고 나서는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혼자이고 싶지 않아서, 내 욕심을 앞세워 고양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 점이 가장 두려웠다.

 

 

아마 이런 고민을 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도 노령으로 인해 키울 수 없는 사람을 반려로봇의 핵심 구매층으로 삼은 제품이 속속 개발된 것을 보면 말이다. 일본 완구업체인 세가토이즈에서 2009년 출시한 유메네코 비너스는 본격 고양이형 로봇인데, 제작사 측에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하는 사람 중에서도 특히 노인층, 특히 치매 노인을 대상으로 정서적, 인지적 효과가 있다고 홍보했다. 연구 개발에 참여한 도호쿠 대학 노화의학연구소에서도 유메네코 비너스가 두뇌 노화 방지에 효과를 나타냈다고 밝힌 바 있다. 최신형 아이보처럼 인공지능 로봇은 아니지만, 사람의 손길에 기초적인 반응을 보이고 교감을 흉내 내는 고양이의 모습이 홀로 적적하게 만년을 보내는 노인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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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인지능력과 심리치료를 위한 반려로봇 고양이가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모델은 해즈브로 사의 Joy for All.

 

 

미국 완구업체 해즈브로에서 2015년 선보인 조이 포 올(Joy for All)’ 시리즈 중 고양이 로봇 역시 유메네코 비너스와 비슷한 선상에 있다. 패키지에 사용 연령을 5~105세로 표기한 데서 알 수 있듯, 어린이뿐 아니라 노년층까지 폭넓게 겨냥한 반려로봇이다. 이 로봇 고양이는 홀로 살면서 고독감에 시달리고, 외부 자극이 줄어들면서 인지능력 저하를 겪는 노인에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가격도 99.99달러로 아이보보다 훨씬 저렴한데, 인공지능은 갖추지 못했어도 내장 센서로 동작과 터치를 인식할 수 있다. 안아주거나 쓰다듬으면 가르랑거리고 울기도 한다. 외형은 실제 고양이에 비하면 다소 조악하지만, 보드라운 털과 분홍 육구를 구현하는 등 고양이의 포근함을 최대한 흉내 내려 애쓴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개발진에 따르면, 추후 인공지능을 접목한 후속작을 개발해 노인의 일상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기능도 추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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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for All 패키지. 모델을 노인으로 설정한 것과, 사용연령을 5-105세까지로 명기한 것이 인상깊다.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더는 반려동물을 돌보기 힘든 상황에서도 인간은 왜 동물을 곁에 두고 싶어 할까. 늙고 병들어도, 세상에 혼자 남아도 사랑에 대한 욕구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랑의 본질이 스킨십, 따뜻한 접촉에 대한 욕구라는 것은 심리학자 해리 할로 박사의 유명한 원숭이 애착 실험을 통해 널리 알려진 바 있다.

 

 

해리 할로는 어미와 격리한 새끼 원숭이 앞에 두 개의 엄마 원숭이 인형을 두었다. 하나는 철망으로 대충 얼기설기 만든 인형에 젖병을 끼워둔 엄마이고, 다른 하나는 빈손이지만 철망을 헝겊으로 감싼 엄마였다. 한데 새끼 원숭이는 철망 엄마쪽으로 가는 대신 헝겊 엄마의 품을 택했다. 생존 본능에 가장 충실할 것으로 여겨지던 동물조차, 육체적 허기보다 감정의 허기를 먼저 채우는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 하물며 동물도 그러한데 인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존재에 대한 사랑이 사람을 생기 있게 하고, 살아 있게 만든다. 고양이라는 존재가 삶의 목표 중 큰 비중을 차지해온 사람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반려로봇은 절대 살아 있는 고양이를 대체할 수 없다. 고양이와 살아본 사람이라면 로봇 고양이와 함께 지낼수록 진짜 고양이를 더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인조 모피로 몸을 둘러싼 현대의 반려로봇 고양이는, 어쩌면 해리 할로가 실험용으로 만들었던 헝겊 엄마의 다른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려로봇이라도 있는 삶이, 적어도 헝겊 엄마조차 존재하지 않는 삶보다 낫지 않을까. 살아 있는 고양이에 좀 더 가까운 반려로봇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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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고경원

고양이 전문출판 ‘야옹서가’ 대표. 2002년부터 길고양이의 삶을 기록하며 국내외 애묘문화를 취재해왔다. 저서로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2007),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2010), 작업실의 고양이》(2011),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2013), 《둘이면서 하나인》(2017) 등이 있다. www.instagram.com/catstory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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