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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꾸눈 하록 선장의 대모험 02-진짜 모험이 시작되다!

by 버찌네 posted Jul 1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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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록-수술3일차.jpg

 

수술 3일차. 웃고 있는 걸 찍었는데 어정쩡하게 나와서 미안!

 

 

말의 값은 결코 싸지 않습니다. 하물며 생명을 두고 말하는 것은 그 값이 얼마이든 반드시 치러야 합니다.

 

하록이 저희 집 베란다 아래 은신하고 있을 때, 하루는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비비탄을 쏘며 "도둑고양이는 쏴죽여야 한다!"고 소란을 피운 적이 있어요. 저는 웬 소란인가 싶어 베란다로 나갔죠. 사내아이들은 "아줌마! 아줌마네 집 밑에 시커멓고 눈이 이상한 고양이가 있어요. 저희가 잡아 드릴게요!"라고 외쳤어요. 저는 아이들에게 "너희들 참 이상하다. 아줌마가 집의 안팎에서 키우는 고양이를 너희들이 왜 쏴 죽이니? 아줌마가 너희한테 고양이 잡아 달라고 했니? 그럼 집 안에 있는 얘부터 쏴 죽이지 그러니?" 그랬지요. 아이들은 머쓱해서 "시커먼 고양이, 도둑고양이에요! 아줌마 집 안에 있는 고양이랑은 달라요."라고 말했죠. 저는 대답했어요. "다르지 않아. 얘랑 쟤는 똑같은 고양이야. 아줌마가 똑같이 밥 주고 예뻐하는 고양이야. 길고양이든 집고양이든 고양이는 다 고양이야." 아이들은 이상한 아줌마라면서 물러갔어요.

 

그땐 제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지요. 내가 밥을 주고 예뻐하는 아이, 그 아이를 아프지 않게 하고 배곯지 않게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제가 내뱉은 말의 값을 치르기 위해선 어떠한 수고도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을. 하록을 구조하고 나서야 절실하게 깨달았어요. 그 깨달음의 날은, 드디어 오고야 말았지요.

 

아주 평범한 토요일 오후.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를 하느라 베란다를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우어엉, 울음소리가 들려요. 하록이네요. 이제 녀석은 낮에도 겁없이 꼬리를 세우고 저희 집앞 잔디밭을 마당삼아 놀고 있어요. 저희 집안에서 키우는 냥군은 꼬리를 커다란 총채나 솔방울마냥 부풀리고 눈이 동그래져서 하록을 바라보고 있고요. 이렇게 서로 베란다 사이에 두고 낯을 익히면 언젠가 합사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서로 바라보고 와웅거리게 놔두었죠. 그런데 하록이 절 발견했어요. 그리곤 남은 한쪽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와우옹우어어엉 하면서 폴짝폴짝 뛰어오르더군요. 집냥군은 귀를 빠짝 꺾고 깜짝 놀래서 초긴장 상태. 저는 당황해서 어찌할바 모르고요. 결국 하록은 저희집 베란다 난간을 꽉 쥐고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그때 남편이 밖으로 나가서 하록을 불렀어요. 하록은 다시 폴짝거리며 남편에게 갔죠. 저는 베란다에 서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어요. 마침 동네 어르신 부부가 산책하시다가 하록을 발견하고 다가오셨어요. 그리고 알은체를 하시더라고요. "이 녀석, 애교가 많아." "어르신 얘 보신 적 있으세요?" "응, 가끔 본다오. 다른 길냥이들은 꼬질꼬질한데 얘는 아주 고급스럽잖아. 털이 벨벳 같고."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여보, 위에 가서 고등어 좀 가져와요." 하시더군요. 할머니가 고등어를 가져다 드리자 할아버지는 하록에게 고등어 살을 발라 조금씩 먹이셨어요. 하록은 그야말로 '정줄을 놓고' 짭짭 맛있게 고등어를 먹었지요. 할아버지는 하록을 쓰다듬으시며 고등어를 계속 먹이셨어요. 그때 남편이 할아버지께 나지막이 부탁드렸어요. "어르신, 저희가 얘를 잡아서 병원에 데려가려는데 저희 손엔 잘 안 잡혀요. 얘 좀 살짝 잡아서 안아 주세요." "그래? 얘 눈을 고쳐주려고?" "네, 어르신." 할아버지는 하록을 살그머니 안아서 남편에게 안겨주었습니다. 집에서 지켜보고 있던 저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부부가 그렇게 잡으려고 난리를 피워도 안 잡히더니 어르신이 안아올리자 잘 안겨 있더라고요. 저는 남편에게 창 너머로 "병원으로 가!" 외친 후 지갑과 셔츠를 챙겨서 뛰어나갔어요.

 

하록은 남편에게 마치 꼬마원숭이처럼 찰싹 달라붙어 있었어요. 고양이를 케이지 없이 그냥 끌어안고 달린다는 게 어떤 일인지 잘 알기에, 남편이 지금 그야말로 팔뚝에 송곳이 박히는 고통을 참고 병원에 뛰어가고 있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집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굿모닝펫 동물병원이 있습니다. 저는 남편을 앞질러 뛰어가 동물병원 문을 열어젖혔습니다.

 

"선생님! 잡았어요.... 헉헉... 잡았어요!"

"잡으셨어요?!"


그동안 몇 차례 하록을 포획하기 위해 동물병원에 전화를 해서 문의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동물병원에선 제가 계속 길냥이 구조를 시도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셨죠. 마침 다행히도 다른 진료동물이 없는 상황이었어요. 선생님에게 하록을 맡기고 남편을 돌아보니 윗옷은 모두 찢어져 있고 양팔과 목덜미엔 길게 스크래치가 나 있어요. 하지만 생각보단 상태가 나쁘지 않더군요. 남편의 팔을 세척하고 약을 바르는 동안 하록도 진료를 받았습니다.

 

"네... 한쪽 눈은, 렌즈가 파열됐네요. 충격을 크게 받은 것 같아요. 어?! 중성화 수술이 되어 있는걸요. 수컷이에요. 아직 실밥이 조금 남아 있어요. 다른 건 괜찮네요. 앞발에 살짝 피부가 까져 있는데. 싸우다 까졌나 봐요." 고양이의 안구가 손상된 채로 놔두면 그것이 종양으로 악화되기도 한대요. 그래서 눈을 다친 고양이는 안구적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중성화수술이 된 1년령의 러블 냥이 하록. 이 아이는 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우리에게 오게 된 걸까요. 그리고 이제 한쪽 눈을 잃어야 하는 하록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무엇에 홀린 것처럼 하록의 진료를 부탁 드리니, 총 2주 간의 치료기간이 필요하다 하셨습니다. 안구적출수술이 아무는 데는 약 1주일. 혹시 있을지 모를 전염병의 잠복여부를 지켜보는 데 2주 정도가 필요하다고 하시네요. 수술은 잘 될 것이고 녀석도 비교적 건강한 편이라 하셔서 안심했습니다. 그러나 수술과 입원비용은 사실, 깜짝 놀랄 만큼 비쌌습니다. 소동물 치료비가 사람의 그것보다 더 비싸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하록이를 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저희 부부 두 사람이 이박삼일 홍콩 여행을 한 번 다녀 올 수 있을 정도의 규모더라고요.

 

정말 감사하게도 병원 측에서는 입원비를 많이 디스카운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 글을 쓰게 된 까닭이기도 한 고양이보호협회에서도 회원들의 귀한 성금으로 치료비 지원을 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처음 며칠은 정말 막막했어요. 여름휴가비를 모두 반납하여 하록에게 올인하기로 결정했지만 많이 부담이 되었거든요. 하지만 고양이보호협회와 병원 측의 배려와 이해로 하록을 구조한 저희들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지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 고양이보호협회와 굿모닝펫 동물병원에 감사를 올립니다.

 

하록은 현재 안구적출수술 후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장난끼 많고 건강한 러블고양이입니다. 한쪽 눈에 스테플러를 박고 있지만 건강한 다른 쪽 눈은 또리방하지요. 기생충이나 피부병도 없고 귓속도 깨끗하다고 하네요. 무엇보다 그 힘든 치료에도 하악질 한 번 안할 만큼 순하고 착한 성품이라고 합니다. 밥도 잘 먹고 잘 놀고 지내고요. 또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가까운 지역에서 하록을 임보해 주실 분도 구해졌다는 것입니다. 동물을 무척 사랑하고 아끼는 분께서 하록을 당분간 맡아 주시기로 했으며, 식구들의 의향을 물어봐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입양도 생각하고 계신다 하여 안심이 됩니다.

 

애꾸눈 우주해적 하록 선장, 이 녀석의 대모험은 여기까지가 아니라 앞으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곳에서 자신을 반기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매일매일 신나고 흥미로운 일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 충분히 살 부비고 사랑하고 끌어안고 예뻐하며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매일을 살아 내는 것. 사람의 가장 좋은 친구로 함께 웃고 울면서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것. 하록의 대 모험은 바로 그런 일상 속, 매일매일 눈뜨고 잠드는 그 모든 순간입니다.

 

건강하게 버텨 주고 스스로 제 살길 개척해서 달려온 하록, 녀석을 거두는 데 용기와 확신을 준 저의 남편, 하록을 구조하는 데 더 이상 외롭거나 힘들지 않게 도와 주신 고보협, 동물병원, 한 눈 없는 고양이라도 전혀 상관 없다며 하록을 품어 주신 임보 어머니,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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