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길냥이

길고양이와 너구리의 대치...

by 재크 posted Nov 0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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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길고양이들 밥을 챙겨주러 집을 나섭니다.

차돌이와 로빈이 먹을 수 있도록 플라스틱 용기에 캔을 하나 따서 사료 위에 얹어 놓습니다.

 

잠시 기다리니 철책 뒤로부터 차돌이가 내려와서 입에 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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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뒤에 뭐가 있는지 녀석은 급히 피하듯이 잠시 몇 걸음 물러났다가 철책 뒤를 경계하며 조심스레 다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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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별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 중단했던 쳐묵을 재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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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도 뭔가 찜찜한 것처럼 철책 뒤에 대한 경계를 감추지 못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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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을 바꿔 사진을 찍느라 제가 이동하며 가까이 가도 녀석의 정신은 철책 뒤의 무엇엔가에 쏠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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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저도 대충 감을 잡습니다.

얼마 전부터 윗동네 사시는 캣맘 한 분이 그러시길 커다란 회색 고양이가 왔다갔다 하는 게 보이더랍니다.

저도 며칠 전에는 애들 밥 주다가 기척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계가 대단해서 캄캄한 밤중에 녀석의 뒷모습밖에 보지 못했고, 일반적으로 털 무늬로 구분되는

삼색이, 노랑둥이, 고등어, 턱시도 뭐 이런 애들하고는 많이 다르고, 굳이 분류하라면 카오스에 가깝지 않을까...

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녀석이 왔구나 싶습니다.

숨을 죽이고 동작을 멈춘 채 조용히 기다립니다.

 

약간의 기척이 느껴지자 그 쯤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으로 렌즈를 맞춘 후 셔터를 누릅니다. 이게 그... 회색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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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숨을 죽인 후 녀석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 때다 싶을 때 한 방 더 찍습니다.

찍고 보니.... 오 마이 갓, 이건 고양이가 아니라.... 너구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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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미동도 않으니 녀석은 인기척은 없다고 판단한 듯 바위 위로 몸을 드러냅니다. 

연방 터지는 디카의 플래시는 그저 자연현상 정도로 인식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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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실체를 완전히 드러낸 너구리... 길고양이 차돌이와 먹이를 사이에 두고 대치 중입니다.

너구리의 출현과 위협적인 움직임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듯, 차돌이는 물러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리를 쭉 뻗고 등을 굽혀 자신의 본래 몸보다 크게 보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위협을 느꼈을 때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본능적인 동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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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도 차돌이의 동작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고는 어쩔까 고민 중인 모습이 역력합니다.

연신 셔터를 누르며 지켜보는 제 손에도 땀이 맺힙니다. 과연 이 두 녀석이 한 판 붙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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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야생의 녀석들은 한 끼의 식사에 목숨을 걸 정도로 무모하진 않습니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포기한 채 올인하지는 않습니다.

한참을 을르던 너구리는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등을 돌려 떠나고 

제 몫 지키기에 혼신의 힘을 다 하던 차돌이도 긴장한 탓에 입맛을 잃었는지 사료 한 그릇을 다 못 비우고 떠납니다.

 

잠시 뒤, 그 자리에 힘 없고 약해서 맨날 천덕꾸러기를 벗어나지 못하던 로빈이 은근슬쩍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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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차돌이가 먹다 남긴 밥을 맛있게 먹습니다. 어부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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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캣맘도 사료를 주러 나오십니다.

만난 김에 회색고양이인 줄 아셨던 게 너구리라고 말씀드리고 사진을 보여 드립니다.

놀라서 입을 못 다무십니다.

동물원에서나 볼 줄 알았던 너구리가 우리 동네에 서식한다니...

 

고양이와 너구리...

공존할 수 있을까요?

싸우게 되면 누가 이길까요?

발톱은 고양이가 날카롭지만 이빨의 크기나 무는 힘은 너구리가 더 셀 것 같은데...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너구리가 있다며 사진을 보여줬지만 아내는 그닥 놀라지 않습니다.

녀석이 바위동산을 산으로 알고 사는 모양이라고,

앞에 개울도 있고 하니 녀석이 살기에는 뭐 그리 나쁜 환경이 아니지 않겠냐고...

그러면서 그럽니다,

걔들도 잘 먹고 잘 살게 사료나 넉넉히 갖다 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