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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2128 추천 수 2 댓글 11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굴릴 줄도 아는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나는 툇마루에서 졸지 않으리라
가시덤풀 속을 누벼누벼 너른 벌판으로 나가리라
거기서 들쥐와 뛰어놀리라


배가 고프면 살금살금 참새떼를 덮치리라
그들은 놀라 후다닥 달아나겠지

 

하하하 폴짝폴짝 뒤따르리라
꼬마 참새는 잡지 않으리라
할딱거리는 고놈을 앞발로 툭 건드려 놀래주기만 하리라
그러고 곧장 내달아 제일 큰 참새를 잡으리라


이윽고 해는 기울어 바람은 스산해지겠지
들쥐도 참새도 가버리고 어두운 벌판에 홀로 남겠지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어둠을 핥으며 낟가리를 찾으리라
그 속은 아늑하고 짚단 냄새 훈훈하겠지


훌쩍 뛰어올라 깊이 웅크리리라
내 잠자리는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겠지


혹은 거센 바람과 함께 찬 비가
빈 벌판을 쏘다닐지도 모르지
그래도 난 털끝 하나 적시지 않을걸


나는 꿈을 꾸리라
놓친 참새를 쫓아 밝은 들판을 내닫는 꿈을.

  • 미카엘라 2012.08.15 12:35
    황인숙 시인의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입니다.

    어느날 동네 안경점에 아들 안경맞추러 갔더니
    주인분께서 황인숙시인님의 책을 읽고 계셨어요.
    황시인님이 친구분이시래요.
    모임이 있어도 시간만 되면 고양이 밥줘야 한다고 서둘러 가신대요. ㅎㅎㅎ

    그후로 도서관 가면 그분책이 뭐가 있나 찾게 되요.
    '목소리의 무늬' 랑 '인숙만필'은 찾아봤는데... 아직 다른것은 못봤어요.

    고양이 밥주는것만으로 황인숙 시인님이 남같지 않네요. ㅎㅎㅎ
  • 탐욕 2012.08.15 17:41
    ㅋㅋㅋ 난 언니가 공원에서 뛰노는 코코 쳐다보다가 드디어 시를 쓰셨구나 했어요
  • 미카엘라 2012.08.15 18:01

    미치겄다~ ㅎㅎㅎ
    내가 이런 시를 쓸 깜냥이나 되간디?
    이 시를 몇번이나 읽고 또 읽는데도 읽을때마다 코가 시큰거려 오고
    까만 얼룩 고양이가 뛰노는 그림이 막 그려지네.

    나도 꿈을 꿀래..
    길고양이 밥안주면 벌금 5억에 무기징역 살아야한다는 공고문이 붙고...
    사람들 모두의 가방엔 길고양이 사료랑 캔이 들어있는 꿈을....

    나도 소망할래..
    길고양이에겐 무료임대 아파트 한채씩 분양해주고...
    평생 먹고 쓰고도 남을 괭이평생연금 주는 날을...

    ㅎㅎㅎ
    아우~ 생각만 해도 신난다.
    길냥이들한테 바가지 들고 밥얻어 먹으러 갈날이 빨리 왔음 좋겠당~

  • 시우 2012.08.15 13:43
    참 마음에 와닿는 시이네요..
    저도 도서관에서 시집 찾아 읽어봐야겠네요..
  • 미카엘라 2012.08.15 18:07

    그쵸?
    마음이 잔잔해져오면서도

    한편으론 고양이들의 삶을 알아버려서인지  슬픔이 살짝 마음을 적시는  느낌의 시인것 같아요.

    오늘 비오니 컴컴해서 저한테는 책 읽기 딱 좋은 날씨에요.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하나' 라는 책을 들고서
    신선놀음 아닌 신선놀음을 했는데요.

    흠~ 옆에 아이들이 있어 더 행복하네요.
    안방 침대위 대나무 돗자리가 차가워진것같아 방석을 깔아놨더니
    블래기랑 삐용이가 한자리씩 차지하고
    소파엔 산이가
    정수기 위엔 봉달이가
    돼랑이를 좋아하는 공주는 돼랑이 침대위에...

    행복이 뭐 별거냐 싶어요. ㅎㅎㅎ

  • 탐욕 2012.08.15 17:40
    해방촌 고양이가 유명하던데요. 마포 도서관에 있더라구요. 남 얘기같지 않아서 참 재밌어요. 지난해인가 도둑괭이 공주라고 소설도 내셨는데, 그분 글이 고양이를 돌보는 이야기라 그런지 참 따뜻해요. 그분이 오랫동안 해방촌이라는 곳에서 길냥이들을 돌보셨는데 몇달 전 우연히 그곳을 몇번 갔거든요. 길애들이 다들 밝아보이고 건강해 보이더라구요. 왠지 황시인의 밥을 먹는 애들이 아닐까 싶어 훈훈했지요...
  • 미카엘라 2012.08.15 18:13
    해방촌 고양이가 아현분관에는 없어서... ㅠㅠㅠ

    언제부터인가 도서관 가서도 제목에 고양이만 나오면 들춰보게 되네.
    하긴 전철탔는데 어느 고양시에 있는 대학교 광고에 고양이가 나와서 그것도 반갑더라만.
    미칭게야~ ㅎㅎㅎ
  • 마마(대구) 2012.08.15 21:37
    누가 존재를 뭐라하지 않는다면 저런 자유를 맘껏 누리는것도 좋을것 같아요 하지만 보이는것만으로 사람들 말속에 섞여 있다는게 속상해요 마방에 있는 아이들 저의 백을 믿고 쇼파고 어디고 막 다녀도 아무말 안하고 들로 돌아 다니면서 100평이 넘는 화장실을 쓰고 있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보기에 좋아요 관심속의 자유로움이요
  • 미카엘라 2012.08.17 08:07
    우와~ 관심속의 자유로움이란 말이 마구 와닿네요. ㅎㅎㅎ
  • 바아다 2012.08.17 01:39
    미카엘라님이 시도 이리 잘 쓰시나 해서 깜놀~ ㅋㅋ
    황인숙 작가님이 작년에 내신 '도둑괭이 공주'를 지인한테 선물했는데 정작 저는 아직 못 읽어봤네요~ ㅎ
  • 미카엘라 2012.08.17 08:09

    내가 썼다고 뻥칠걸 그랬나요? ㅎㅎ
    저는 오늘 ' 해방촌 고양이 ' 배송오기로 했어요.
    책보면서 혼자 무릎을 치겠죠.

    맞아 맞아~  나도 이래~ 하면서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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